[시가 있는 아침] 신현림 '나의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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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 신현림(1961~ )의 '나의 싸움'

이미지의 부딪침이 없는 시는 공허한 관념만 남아 있기 십상인데, 이 시는 특이하게도 관념으로 이미지를 생산한다.

외로움.괴로움.슬픔.치욕.우울함.불안.고통과 같은 낡은 말들이 새파랗게 살아서 움직인다. 첫 행부터 마치 선언하듯 치고 들어가는 잠언의 힘이 거기에 한몫하고 있다.

마지막 행의 구어체 어법은 엄살 떠는 것으로 일생을 소비하는 삶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은연중 말하고자 하는 사랑과 노동과 투쟁! 이것을 생의 3대 요소라 부르면 안될까.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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