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이제는 통일과 정쟁을 분리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6월이 오면 한국인은 전쟁과 평화, 분단과 통일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6.25 51주년과 남북 정상회담 첫돌을 맞는 이번 6월에는 더욱 착잡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냉전의 마지막 장을 이 땅에서 매듭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오늘도 실감하고 있다.

냉전이 낳은 마지막 분단국이란 운명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과 행동만이 민족사의 이 어려운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기게 해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6월에 우리에게 걱정이 쌓여 가는 것은 대결의 상대인 북한이나 동맹국인 미국 때문이 아니다. 물론 북한의 행동도 심상치 않고 미국 새 행정부의 자세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혀 예기하지 못했던 상황도 아니고 우리가 적절히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불안을 안겨주는 것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국민적 분열의 징조가 날로 짙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 통일정책에 대한 파열음이 높아 간다면 어떻게 전쟁까지 치른 남북의 대결관계를 평화적 통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부재가 반드시 국민적 분열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실로 광범위한 공감대가 대다수 국민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치적 성향이 다른 여러 지도자와 정권이 교체돼오는 가운데도 비교적 일관성있는 정책기조가 유지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바탕이 확실히 잠재하면서도 그것이 실제적 합의로 현실화하지 못한 것은 한국 정치가 지닌 구조적 한계성과 후진성에 그 원인이 있다. 한국 정치는 국민적 합의나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하는 데 훨씬 높은 능률을 보여 왔으며 통일문제도 그러한 한국 정치의 다이내믹스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공감대의 핵심은 무엇인가.

반세기가 넘는 뼈아픈 분단의 경험을 되새겨 보면서 우리 국민은 남북관계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체질화했다고 생각된다.

첫째,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개인적.사회적 가치며 우리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6.25를 맞는 국민의 감회는 바로 자유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연계되는 것이다.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재발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무섭게 많은 희생자와 파괴를 가져오는지를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반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셋째,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통일로 향한 전진을 시도하려면 남북이 두 체제의 존재를 상호 인정하고 여러 차원에서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남북간 대화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국민이 과도할 만큼 큰 기대를 걸어온 것도 이미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조성돼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평화.대화는 이미 잠재적 국민합의에 기초한 남북관계 진전의 기본 원칙으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잠재적 국민합의를 통일정책 수립으로 연계했던 경우를 우리는 1980년대 말에 경험했다. 88년은 냉전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한국이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해로 기억되고 있다. 바로 그해 4월 총선에서는 야당이 압승했고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출범했다.

한편 6.29선언으로 봇물이 터진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묶여 있던 통일 논의가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전국의 대학 캠퍼스는 물론이려니와 KBS를 비롯한 방송매체에서도 심야까지 통일문제에 대한 공개 토론이 진행됐다.

그렇게 고조된 통일논의의 열기 속에서 임수경씨 방북 사건이 일어났음을 많은 국민이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 13대 국회는 여야 합의로 통일특위를 구성해 광범위하게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통일정책의 기조를 다지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 당시 통일원장관이었던 나는 전국 곳곳에서 거의 매일같이 열린 통일논의에 참여했었지만 무엇보다 국회 통일특위의 여야 의원들과 함께 기울였던 통일정책 수립의 노력을 가장 값진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세 야당의 3金 총재들도 통일문제를 정당 차원을 넘어선 범국민적.국가적 과제로 인정하고 협력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결과로 국민 여론의 양극을 제외한 폭넓은 중간을 토대로 하고 탈냉전의 국제적 흐름에 발맞춘 새 통일방안, 즉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 89년에 공식화한 것이다. 바로 이 때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이뤄진 시기였다. 이 통일방안은 김영삼(金泳三)정부에서 재확인됐으며 현정부에서도 계속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의 생각이 그러하고 역대 정부가 추구한 기본정책 방향이 그러하다면 남북관계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을 더 이상 방치할 필요가 없다. 기민당과 사민당이 함께 동방정책을 추진했기에 독일은 순간적으로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대회가 일년 후로, 다음 대통령선거가 일년반 후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우리는 통일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대결구도에서 분리시켜 내재적 국민 합의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차분히 처리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초당적 협력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한국 정치가, 특히 여야 지도자가 당면한 최대 과제이며 국민은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잡다한 슬로건은 거둬들이고 민족공동체 건설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면서 우선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의 윤리와 논리를 회복하는 것이 6월을 맞는 우리의 갈 길이다.

이홍구 <본사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