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바다 한가운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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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폴라드와 램스델이 집착하고 있던 것은 자기들이 잘 알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남겨준 선물, 바로 그들의 뼈였다. 그들은 동료들의 손가락뼈를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어두는가 하면 갈비뼈와 장단지뼈를 깨뜨려서 달콤한 골수를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항해하고 있었다…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거기 사람들의 얼굴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 (2백44쪽)

1821년 2월 23일 아침, 칠레 연안에서 멀지않은 남태평양에서 낡은 보트를 타고 표류하고 있던 두사람이 도핀호에 의해 구조되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고래의 공격으로 난파된 에식스호를 떠난 지 94일째. 제비뽑기를 통해 동료까지 희생시켜 생명을 연장한 결과였다.

이 '엽기적' 인 내용의 신간 『바다 한가운데서(원제 'In the Heart of the Sea' )』는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모티브가 된 실제 포경선 침몰 사건을 치밀하게 재현한 논픽션이다.

에식스호의 일등항해사였던 체이스의 조난기와 사관실 담당 급사였던 니커슨의 회고록 등을 토대로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것.

지난해 타임지에 의해 '최우수 논픽션' 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좋은 기록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멜빌의 소설이 끝나는 시점, 즉 포경선의 침몰은 이 책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미 동부 뉴잉글랜드 남쪽 해안에서 38㎞ 떨어진 작은 섬 낸터컷. 1819년 8월 신임선장 폴라드 등 20명을 태운 2백38t짜리 에식스호는 양질의 고래기름을 가득 싣고 돌아올 꿈에 부풀어 출항한다.

남미대륙을 돌아 태평양에 들어서면서 성공적인 고래사냥을 한 그들은 마무리 '한 건' 을 하고 있던 1820년 11월 20일, 운명의 사건을 맞는다. 80여t의 고래가 갑자기 배의 좌현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배를 순식간에 박살내고만 것이다.

책의 진짜 드라마는 이때부터다. 가까스로 탈출한 선원들이 세 척의 보트에 나눠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서 90여일간 벌여야 했던 처절한 생존투쟁. 도중에 발견한 무인도에 남았다 나중에야 구조된 3명의 선원과 끝까지 항해를 계속, 인육을 먹으며 살아 남은 5명의 귀향. 이후 이들이 보여준 충격 극복의 다양한 모습들….

현재 이건 해양연구소 소장인 필자 나다니엘 필브릭은 19세기 포경산업의 세계적 중심지였던 낸터컷의 역사와 뱃사람들의 습성, 고래잡이 과정은 물론 갈증과 굶주림이 인간의 판단력에 미치는 영향, 바다에서의 생존방법과 식인풍습 등까지를 여러가지 사료 및 연구사례와 함께 솜씨좋게 끼어놓았다.

인종.계급.지도력.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인간사회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가운데 논픽션만의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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