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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름이 붙은 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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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천문연구원이 발견한 5개의 소행성에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인 최무선.이천.장영실.이순지 그리고 허준의 이름이 국제천문연맹에 의해 공식적으로 붙여졌다는 사실이 몇 달 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사실 소행성에 한국과 관련된 이름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록 일본인에 의해 발견되긴 했지만,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이란 소행성과 백제의 승려로 일본에 천문학을 전수한 관륵의 이름을 딴 '관륵'이라는 소행성도 있다.

현존하는 사람의 이름이 붙은 것도 둘 있다. 천문학자 나일성 교수의 성을 딴 '나'라는 소행성과 한국 과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전상운 전 성심여대 총장의 이름을 딴 '전'이란 소행성이 그들이다.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발견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붙인 '통일'이라는 이름의 소행성과 보현산천문대의 이름을 딴 '보현산'이란 이름의 소행성도 있다.

천체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국제천문연맹의 천체 명명 그룹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예를 들면 혜성의 경우 발견자의 이름을 붙인다. 만약 공동으로 발견했다면 공동 발견자의 이름을 함께 붙이는데, 이 경우 3명까지 제한한다. 이에 반해 소행성의 경우는 발견자가 이름을 붙일 수 있으나 자신의 이름은 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다.

수성의 운석 구덩이에는 유명한 문학가나 예술가 등 재간이 뛰어난 사람들의 이름을 붙인다. 이는 수성의 영어 이름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재주꾼 머큐리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유명한 음악가를 비롯해 보티첼리나 고흐 같은 화가, 그리고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조선시대의 시조작가인 '윤선도'나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 등 한국인도 두 명 있다.

금성의 운석 구덩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여자들의 이름을 붙인다. 이는 금성이 태양계 행성들 중에 유일하게 여성인 '비너스'에서 그 이름을 따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성의 운석 구덩이 중에는 미국의 오페라 가수인 마리아 칼라스의 이름을 딴 '칼라스', 영국의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이름을 딴 '크리스티',미국의 유명한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의 이름을 딴 '덩컨'등이 있으며, 한국 사람으로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기생 황진이 등 두 명의 이름이 붙은 운석 구덩이가 있다.

이에 반해 화성의 운석 구덩이에는 대체로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큰 도시들이 아닌 작은 도시들의 이름만 붙인다. 그중에 한국의 도시로는 경상도에 있는 진주와 전라도에 있는 나주와 장성 등 세 곳이 있다. 화성에는 이 외에도 계곡들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강의 이름을 붙이는데 한국의 이름으로는 '낙동'이 유일하다. 목성에는 많은 위성이 있는데, 그들의 운석 구덩이에는 세계 여러 나라 신들의 이름을 붙인다. 그중 레다라는 위성의 운석 구덩이에 '아나닌'과 '환인'등 한국 이름이 붙은 것이 둘 있다. 그중 '아나닌'은 아마도 하나님을 오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혜성의 이름 중에는 한국과 관련된 것이 전혀 없다. 혜성의 이름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르는데, 한국인 중에서 혜성을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천체에 이름을 붙이는 원칙 중 하나가 세계주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나라를 위해 공헌한 애국자의 이름은 붙일 수 없다. 또한 약소국이라 해서 무시하지 않는다. 그럴듯하긴 하지만 실은 꼭 그렇지마는 않다. 실제로는 강대국일수록 훨씬 많은 이름이 선택되며, 따라서 약소국의 경우 구색 맞추기 정도에 불과하다.

김봉규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정보연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