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일 잇단 감산…체질개선 박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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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 대기업들이 장기불황에 대비해 잇따라 감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다 2분기 이후에도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줄어 경기가 더욱 나빠질 우려도 있지만 대부분의 감산계획이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과 맞물려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13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일본 철강업계의 대표주자인 신일본제철.NKK.고베제강소 등 3개 업체는 6월 중 철강유통업체의 열연강판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 수요가 줄어드는데 유통물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스미토모(住友)금속도 주력 제철소의 올 3분기 생산량을 당초 계획보다 약 8% 줄이기로 했다. 일본 철강업계는 올해 일본 내 조강생산이 전년보다 9.3% 줄어든 9천7백만t으로 3년 만에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용차의 경우 이스즈자동차가 가와사키(川崎)공장을 폐쇄키로 한데 이어 마쓰다도 5월부터 히로시마(廣島)트럭공장의 가동시간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트럭 수요가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미리 대처하는 것이다.

전기.전자제품 메이커들도 마찬가지다. 히타치(日立).NEC.미쓰비시(三菱)전기.도시바(東芝)를 중심으로 64메가 및 1백28메가D램의 감산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보기술(IT)경기의 둔화에 따라 구형 D램에서 점차 손을 떼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생산비중을 옮기겠다는 전략이다.

재고를 줄이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미니디스크(MD).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하는 소니그룹의 소니도치키는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그 범위 내에서만 생산하는 식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있다. 소니도치키는 이런 식으로 올해 재고량을 지난해의 43% 수준으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이같은 감산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구조개혁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과 저성장을 감수하고라도 채산이 안맞거나 경쟁력이 약한 부문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고이즈미 내각의 기본방침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경제재정상은 "일본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앞으로 2~3년간 저성장이 올 수도 있다" 고 말했다.

감산도 하기에 따라서는 구조개혁의 효과를 내 전반적인 기업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가동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생산라인을 아예 없애거나 다른 제품으로 바꾸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野村)증권금융연구소는 금융업을 제외한 일본의 3백45개 주요 기업의 경영실적을 추산한 결과 경상이익이 올해는 1.4% 감소하지만 내년에는 15.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대기업들의 감산바람에 따라 일본 제조업체들의 생산 및 판매 관행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팔아치우는 고도성장기의 영업관행은 구조조정기에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닛케이 비즈니스 최근호는 이를 가리켜 일본 기업들의 '생산하지 않는 용기'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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