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드컵결산]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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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많은 화제를 남기고 컨페더레이션스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예행연습으로 치러진 이번 대회는 문제점과 자신감을 동시에 발견하게 해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1년간 더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요.

※ 참석자 : 손장환 기자 · 허진석 · 신준봉 · 장혜수(체육부) · 안성식 · 정영재 · 장문기 · 정현목(일본)

-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기력이었습니다. 만약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면 이번처럼 남의 잔치 보듯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월드컵에서도 한국이 예선 탈락하면 대회는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최국으로서 일단 예선라운드를 통과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에서 대한축구협회와 히딩크 감독, 그리고 대표 선수들은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 히딩크 감독이 프랑스와의 개막전에서 0 - 5로 진 후 인터뷰에서 "좋은 경험" 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기자들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전력차가 있다 해도 홈에서 대패한 것은 치욕인데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 경기장에 대한 평가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다" 는 말로 집약되더군요. 대구.수원.울산 모두 역대 어떤 월드컵 경기장보다 좋았습니다. 모두가 신축인 데다 최신 공법으로 지은 축구전용경기장(대구 제외)이다 보니 외국 관계자.외신기자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다만 수원경기장의 경우 그라운드의 조명 밝기가 떨어지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 이번 대회에서 가장 훌륭했던 분야는 단연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대구경기장에서는 축구협회와 월드컵조직위원회.대구시 월드컵 관계자들이 자료를 준비하지 않고 서로 미루기만 하자 한 자원봉사자가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자료를 찾아내 "담당 직원보다 훨씬 낫다" 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 울산 시민들이 고맙습니다. 멕시코팀이 서울로 향하던 3일 울산공항에서는 수속 마감시간이 임박해 오는데도 멕시코팀이 단체수속을 할 수 있도록 창구 하나에 20여명이 한줄로 늘어서서 기다려주었습니다. 경기장에는 또 얼마나 많이들 와주었습니까. 몇몇 숙박업소에서 예고없이 요금을 올려받았지만 전반적으로 칭찬을 받을 만했습니다.

- 일본 가시마는 인구 6만4천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지만 시민들의 자부심과 참여 정신이 매우 높았습니다. 대부분의 시민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는데 특히 노인층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시에서 '월드컵 어떻게 치를까'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일반 시민 2백명 정도가 참석할 정도였습니다.

- 이번 대회 통역은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없었던 중에도 열심히 일해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여학생들이라 그런지 축구와 관련된 통역은 미흡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페널티킥' 이라는 용어조차 몰라 엉뚱하게 통역했던 일도 있습니다. 월드컵 때는 사전에 축구용어에 대한 기본교육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일본은 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모집정원의 20%를 채 넘지 못하는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기자들이 털어놓는 '월드컵 준비과정에서 한국이 부러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자원봉사자의 열기였습니다.

- 수원 한국-호주전에 등장했던 한국 응원단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두 패로 나뉜 응원단은 한쪽은 '붉은 악마' , 한쪽은 '백의 천사' 였습니다. '붉은 악마' 는 1984년 멕시코 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했을 때 외국 언론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종교적으로 받아들여 대응책으로 등장한 '백의 천사' 응원단은 축구사랑의 발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관중 동원은 걱정했던 것에 비해 비교적 성공적이었습니다. 첫날 멕시코-호주전에 6천여명밖에 오지 않아 우려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국 경기가 아니라도 비교적 많은 관중이 몰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입장권 강매나 무료 입장 등 무리수가 따랐습니다. 내년 월드컵 때는 '동원' 이 아니라 전광판을 통해 다른 구장 경기를 중계하는 등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 일본에는 월드컵을 계기로 공동개최국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고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으로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가시마와 요코하마에서는 미디어센터에 한국어 통역을 한명씩 배치해 한국 기자들을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대회 명칭 한자 표기에는 아직도 일.한으로 돼있는 게 많아 눈에 거슬리더군요.

- 교통 문제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일본 니가타 스타디움의 경우 셔틀버스가 충분하지 않아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후 셔틀버스 증차, 안내요원 증원 등 발빠른 대응이 돋보였으며 시민들의 호응도 좋았습니다. 한국은 수원.대구 등에서 승용차 홀짝제를 실시했으나 호응이 없어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많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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