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영화 풍경] '미치고 싶을 때' 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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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터키인은 경계인이다. 아시아와 유럽, 문화 충돌의 경계에 서 있다. '미치고 싶을 때'의 신예 감독 파티 아킨은 독일에 사는 터키인. 독일에서 터키 이주민이 얼마나 차별받고 사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영화는 감독처럼 '독일에 사는 터키인'의 존재조건을 다룬다. 파스빈더 같은 독일 감독이 독일 안에서 차별받는 외국인을 다룬 영화는 있었지만, 터키인 감독이 독일 내 터키인의 현재를 다루고, 또 세계적인 평가까지 받은 작품은 '미치고 싶을 때'가 처음이다(올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논리 부족과 비약 등 이야기 전개에서 몇 가지 약점이 보이지만 정치적 역동성이 미학적 결함을 뛰어넘는 과감한 작품이다. 원제는 '벽을 향해'(Gegen die Wand).

20대 터키계 여성인 시벨은 (우리처럼) 억압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도모한다. 상대는 역시 터키계 40대 남성인 차히트로 술집의 빈병을 치우며 사는 노동자다. 두 사람은 단지 동거하는 데만 동의하고 결혼 후에도 각자의 일상을 살기로 약속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두 사람 사이에 진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증폭된다.

시벨이 고향 이스탄불로 돌아가자 남자도 그녀를 찾아 터키로 떠난다. 그들은 고향에서 '벽 없는 세상'을 찾았을까?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또 다른 터키영화 '우작'(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을 보면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이스탄불의 겨울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촬영된 이 영화는 도시와 지방 출신인 두 남자의 '벽'을 다루고 있다. 세련된 아파트에 사는 사진작가는 자기만의 벽 속에 닫혀 있다.

이곳에 시골의 사촌동생이 직장을 구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찾아온다. 그러나 이방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 덮인 추운 도시를 하루 종일 혼자 걸어다니는 것뿐. 두 남자의 고독은 타르코프스키처럼 빼어난 풍경으로 잘 상징화돼 있다. 두 영화는 벽을 허무는 소통은 마치 이런 식으로 벽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듯, 벽이 만든 상처와 단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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