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협상 '매운맛'본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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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7월과 올 4월 두차례에 걸친 한국.중국간 마늘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협상 자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합의문을 국제통용어인 영어로 만들지 않아 내용에 대한 해석을 놓고 논란의 소지를 남긴데다 민간 차원에서 해야 할 중국산 마늘의 수입도 정부 차원에서 3년 동안 직접 보장한 것이다.

외교통상부.농림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국산 휴대폰 수입금지 등 중국의 무역보복조치를 해결하기 위해 연 1차 협상에서 양국은 "한국측이 중국산 마늘을 2000년 3만2천t(정부가 의무적으로 사줘야 하는 최소시장접근물량 1만2천t 포함)등 3년 동안 관세할당 방식으로 민간 차원에서 수입한다" 고 합의하고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로 된 합의문을 교환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중국은 가격이 올라 국내 수입업자들이 수입을 기피하는 바람에 수입물량이 당초 예정됐던 쿼터에 1만여t 모자라자 이를 모두 한국 정부가 구입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양국은 당초 합의한 '관세할당' 의 정의를 놓고 "국제관례상 'Tariff Quota' 임을 뜻하는 수입을 할 수 있는 최대 한도" (한국), "최소한 이 정도까지 수입을 보장해주는 의무수입 물량" (중국)임을 주장했다.

이처럼 양국의 해석이 엇갈렸지만 국제규범에 맞는 용어를 사용한 영문 합의문이 없어 합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놓고 논란이 거듭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간에는 자국어로만 합의문을 교환하는 경우도 많지만 해석상의 논란 등 문제가 많아 2차 협상부터 영문 합의문을 별도로 작성했다" 고 밝혔다.

올 4월 열린 2차 협상에서는 중국의 요구대로 지난해 수입 미소진분을 8월 말까지 한국 정부가 모두 수입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외에도 올해(3만3천t).내년(3만5천t) 쿼터분까지 3년 동안 해마다 수입물량이 미달될 경우 "한국 정부가 이의 이행을 직접 보장한다" 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올해 중국산 마늘 수입물량은 지난달 말 현재 9백t 에 그쳐 연말에 다시 수입 미소진분을 한국 정부가 사줘야하는 것은 물론 수입 분담금을 누가 내느냐를 놓고 '제2의 마늘파동' 마저 우려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세이프가드 조치를 철회하면 중국산 마늘의 의무 수입 여부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는 연계 규정을 넣지 않아 앞으로 한국이 세이프가드 조치를 풀더라도 중국산 마늘을 무조건 일정규모 사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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