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가뭄피해 현장 르포] "땅을 파도 물이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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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산지와 구릉이 대부분으로 면 전체에 저수지 하나 없는 속리산 길목의 충북 보은군 산외면. 유일한 젖줄인 너비 50m의 달천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그 모습은 마치 포격연습장을 보는 듯하다.

백석리에서 장갑.동화.원평.산대리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이 물을 찾기 위해 수십m 간격으로 파놓은 1백30여개의 웅덩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 샘 구실을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물이 말라 자치단체의 재정지원도 별 효력이 없다. 20일 전 소형 관정 16개를 뚫을 수 있는 예산이 군으로부터 배정됐지만 8일 현재 10개밖에 못팠다. 물 나올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자 관정 개발업자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공을 파는 데 30만원의 웃돈을 얹어 80만원을 준다 해도 업자들이 기피하고 있다. 근처 레미콘회사 차량의 지원으로 논바닥을 적시고는 있지만 여기저기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추나 담배 등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다. 먹을 물도 고갈돼 길탕리 1, 2구 등 일부 마을은 소방차로 급수받고 있다.

이같은 3중, 4중고로 이곳 7백여가구 농민들은 요즘 하늘을 원망하는데도 지쳐 있다. 산대리 金인각(39)이장은 "밤새 관정에 괸 물을 서로 끌어다 쓰기 위해 다투는 등 인심이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진천군 초평명 은암리도 사정은 마찬가지. 10㏊ 남짓한 새랫들에는 아직 10% 정도가 모내기를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내기를 마친 논도 나을 게 하나 없다. 논바닥이 손이 들어갈 정도로 갈라지면서 10% 이상의 모가 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 거르미들에는 인근 금성개발의 레미콘 차량 20대가 1주일째 물을 길어다 붓고 있지만 해갈은 어림도 없다.

이밖에 음성군 삼용리에서는 3㎞ 이상 떨어진 소류지에서 4단 양수를 통해 논물을 공급하고 있으나 소류지 물도 점차 떨어져 주민들이 발을 구르고 있으며,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일대 주민들은 참깨나 콩을 심기 위해 밭을 갈아놓고도 물이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8일 현재 충북도 내 가뭄피해 면적은 밭 1천5백㏊와 논 8백55㏊ 등 모두 2천3백여㏊로 전체의 1% 미만이지만 가뭄이 계속될 경우 피해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도 관계자는 "지금까지 가뭄 극복을 위한 용수개발과 양수장비 구입에 71억원을 지원했지만 워낙 가뭄이 심각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며 "앞으로 보름 이상 가뭄이 계속되면 농산물 파동마저 우려된다" 고 말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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