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8군 대학생들의 '항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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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복도에서 떠들지 마시오. 음식점에 오랫동안 머물지 마시오.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

미8군 영내 대학 분교에 다니다 제적된 한국학생들을 속박해온 교칙이다. 그 첫마디는 '용산 군기지 내에서 학교 수업에 참석하는 건 특권입니다' 로 시작된다. 이 교칙이 적힌 A4용지를 한국 학생들은 늘 지니고 다녀야 했다. 깜박 잊고 집에 놓고 오면 영내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교 사무실에서 "우리 학생" 이라고 확인을 해주면 겨우 입장은 됐다. 하지만 교직원이 "모르는 사람" 이라고 하는 바람에 등교를 거부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메릴랜드대 및 CTC 분교로부터 무더기 제적 통보를 받은 한국학생 1백70여명(본지 6월 7, 8일자 31면)의 항변은 계속된다.

한 학생은 "타향살이라도 하듯 설움을 느꼈다" 고 했다. 수강신청을 할 때도 인기 강좌는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신청했는지를 미리 알아봐야 했다. "그들이 고르고 남은 강좌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는 푸념이다.

이에 대해 미군측은 8일 "이 대학들은 미군과 그 자녀들을 위해 설립한 것" 이라며 "청강생 신분에 해당하는 한국 학생들보다 미국 학생이 우선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고 했다. 청강생이란 대목에 대해 기자가 다시 묻자 "정식 학생이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그쯤 된다는 것" 이라고 얼버무렸다.

어쨌거나 이제 미8군 영내에서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됐다. 미군측이 이날 오후 "더 이상 한국 학생들을 받지 않겠다" 는 최종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사정들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굳이 미군 영내 분교로 진학을 했던 학생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은 있다.

미군기지의 관할권은 엄연히 미군에 있고, 그안의 학교도 마찬가지다.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군부대라는 특성상 외부 민간인의 활동을 제약해야 할 이유도 충분히 있다. 설움 속에서도 자퇴를 하지 못한 데는 우리 사회의 학벌만능 풍토도 한몫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토플 성적 제출 등 정당한 절차로 입학하고, 내라는 등록금 다 내고, 하라는 대로 다 하고도 졸지에 갈 곳을 잃은 관련 학생들의 낭패감은 그런 이유로 달래질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하다.

전진배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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