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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구텐베르크 은하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제서야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마샬 맥루한의 1962년작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매스게임과도 같은 책이다. 바로 앞에서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색조각이 있을 뿐인데 멀리서 보면 일사불란하게 변화하는 매끈한 그림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목차가 없다. '정밀한 측정에 대한 열망이 르네상스 시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등의 1백여개의 난해한 표제 문장이 있을 뿐이다. 각 장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순차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하진 않는다. 매스게임의 조각들이 하나라도 빠지면 안되지만 순서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는 것과 같다.

맥루한 자신은 이러한 글쓰기를 "모자이크식"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도 형태 파악이 가능한 모자이크보다는 아주 먼 거리에서 전체를 파악해야 하는 매스게임쪽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가깝다. 각 장만으로는 의미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 '지구촌' 같은 맥루한이 만든 말이 귀에 익었다 해서 앨빈 토플러를 읽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잡았다간 당황하게 될 것이다. 맥루한은 단치히.칸트로비치 등 귀에 선 학자들의 글을 마치 아리스토텔레스나 마르크스의 글처럼 친숙하게 인용한다.

역자(譯者.고려대 신방과 교수)가 수고롭게 붙인 6백여개의 주(註)로도 독자와 맥루한 사이의 지식격차는 극복하기 힘들다. 성실하게 번역한 역자도 지쳤는지 3백쪽을 넘으면서부터는 주가 빠지는 경우도 눈에 띈다. 사실 '낭만적 수학자 샤르댕이…' 라는 식의 글에 주를 다 달자면 1천여 개도 모자랄 듯 싶다.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학자의 글을 몇문단이나 인용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이 책의 마무리글격인 「재편된 은하계(5백3쪽)」부터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은유와 암시,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한 본문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이 글만큼은 비교적 인과관계가 보이는 '선형적 글쓰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말라르메.조이스.블레이크 등 그런대로 귀에 익은 이름들도 반가울 것이다.

원래 인간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5감(感)을 모두 사용해 세상을 통감각적으로 인식했으나 알파벳의 발명.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출현으로 모든 것이 시각으로 환원됐다.

이로 인해 인류는 파편적.선형적.획일적인 세계(구텐베르크 은하계) 속에 살게 됐지만 TV를 비롯한 전기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통감각적 세계관으로 환원하고 있다.

「재편된 은하계」의 이러한 요지는 1백여개의 장마다 각기 다른 논거로 변주된다. 각 장이라는 색조각들이 『구텐베르크 은하계』라는 거대한 매스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개 3~4쪽으로 자잘하게 나눠진 각 장은 '맥루한 은하계' 를 이루는 무수한 별들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내용 그 자체다. 병렬식 서술, 나쁘게 말하면 '짜깁기'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생각보다는 다른 학자들의 글을 엮어놓은 것 등은 인쇄술 이전의 글쓰기 방식(2백67쪽)과 같다.

'미디어가 메시지' 라는 맥루한의 유명한 경구를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인쇄된 책' 이라는 매체를 택했지만 인쇄술이 낳은 '논리-합리-선형성' 을 거부함으로써 구텐베르크의 유산으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종말을 선언하려 한다는 비판을 맥루한은 피하고 있다.

표음문자인 알파벳과 활판인쇄술이 서양의 합리적.개인적 세계관을 낳았고 표의문자의 나라 중국과 인도는 부족적 세계관을 버리지 못했다는 맥루한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한글' 은 세계적인 표음문자이며, 우리 민족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는데도 부족적 세계관에 머무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영문학자 출신다운 통찰력과 시적 은유로 일관하는 맥루한의 글을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비판하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인지도 모른다. 매스게임을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얼룩에 불과하듯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종말' 을 선언하는 맥루한의 거대한 은하계는 멀리서 조망해야 할 것이다.

구희령 기자

*** 디지털시대와 맥루한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사이버스페이스에 너의 관할권은 없다. " (1996년 2월 7일, 존 페터 발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 )

맥루한은 1960년대 『구텐베르크 은하계』, 『미디어의 이해』, 『미디어는 메시지다』 등의 저서로 TV시대의 도래를 알리며 미디어.문명비평가로 각광받았지만 한동안 잊혀졌다.

디지털미디어의 등장은 맥루한의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인류가 '과거의 망령' 과 단절하고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열게 된 것은 맥루한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예언한 그대로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병렬적 글쓰기는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하며, 저자가 곧 독자인 중세적 글쓰기는(2백64쪽)는 인터넷 글쓰기로 부활했다.

'미디어는 인간 신체기관의 확장' 이라는 맥루한의 주장(『미디어의 이해』)은 사이버스페이스 논의를 끌어낸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개념과 일치한다.

TV시대의 전도사에서 사이버시대의 예언자로 화려하게 변신한 맥루한의 저서는 '고전' 이 아니라 '미래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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