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치밀해진 일 교과서 홍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즘 기노쿠니야(紀伊國屋).마루젠(丸善)등 일본의 서점들을 돌다 보면 눈에 잘 띄는 책이 세권 있다. 두권은 지난 1일 출판사 후소샤(扶桑社)가 출간한 중학교 역사.공민교과서다. 한권은 6일 나온 쇼가쿠칸(小學館)문고의 『역사.공민 전교과서를 검증한다』다.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일제의 침략역사를 미화한 곳이 많아 한국.중국 정부가 재수정을 요구하는 등 국제적으로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고 일본 내에서도 많은 반발을 불러온 책이다.

『역사.공민 전교과서를 검증한다』는 우익단체인 교과서개선연락협의회의 미우라 슈몬(三浦朱門)회장이 편찬했다. 이 책은 내년부터 사용될 8개 출판사의 중학교 역사.공민 교과서의 주요 내용을 분석했지만 골자는 한마디로 '후소샤 교과서가 최고로 낫다' 로 집약할 수 있다. 일종의 후소샤 교과서 해설서다.

또 우익역사교과서를 제작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은 곧 니시오 간지(西尾幹二)회장 등 7명의 우익논리를 담은 책을 시판할 예정이다. 이를 보면서 일본 우익세력의 전략이 상당히 치밀하고 과감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밀려온다.

후소샤가 전례없이 일선학교의 교과서 채택 전에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일반 판매에 나선 것은 일본 내 보수.우익세력의 반발여론을 모아 한국.중국의 시정요구에 맞서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수정요구를 받아들일 경우에 대비해 가능한 한 왜곡 역사책을 많이 배포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태도도 '눈 가리고 아웅식' 이다. 문부과학성은 언론을 통해 후소샤 행동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별다른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시판금지법령이 없는데다 공정거래법에도 위반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우익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데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수정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중국 정부로서는 또 한방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지난번 문부과학성이 검정교과서를 심사할 때도 한국.중국 정부는 치밀하게 사전대응하지 못해 우익 역사교과서는 통과되고, 나머지 7개 역사교과서에서도 침략역사 부분이 후퇴하는 등 개악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때인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