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1947~ )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들은 좋겠다! 나처럼 키가 작은 남자들이 이 시를 읽으면 분통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취약한 데를 건드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무 흥분하지는 말자. 키가 작아도 이 시를 읽으면 괜히 즐거워지지 않는가.
그것은 낭만적 감성이 이 시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낭만은 사람을 젊게 하고, 시든 꽃도 활짝 피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눈썹에 매달리고 싶어하는 그 순정한 꿈이 낭만의 구체적 표현이다. 남자들, 거울 앞으로 가서 눈썹 좀 살펴보자.
안도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