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티투어버스엔 '전통과 예술'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서울에 살고 있어도 정작 서울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신을 정화해주는 고궁과 예술의 갈증을 풀어주는 공연장, 삶의 여유를 배울 수 있는 미술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곳이 널려있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돌아보기 어렵다고 불평하지 마라.

여기 한번에 갈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도심의 자유' 에 푹 빠져보자.

바쁘고 각박한 도시의 일상에 지치셨나요? 그럼 버스에 한번 몸을 실어보세요. 출.퇴근길 콩나물 버스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구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탈 버스는 '그냥 버스' 가 아니니까요.

결론부터 말하라구요? 보채진 마세요. 얘기하면 당신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겠지요. 그렇지만 한번도 눈여겨 본 적은 없으셨겠죠. 당신이 탈 버스는 바로 '서울 시티투어버스' 와 '미술관 순회버스' 입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군요. 그럼 어디 한번 탑승해 볼까요.

백살. '서울시티투어버스' 를 타고 돌아본 서울은 꽤나 나이가 들었죠. 하지만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과 아스팔트 도로, 매연을 내뿜는 차량들 사이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죠.

그나마 궁궐이 남아있다는 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그곳엔 서울의 역사가 소록소록 숨쉬고 있답니다.

궁궐에 가면 건물들이 많이 있죠. 그 중에서 왕비가 기거하던 곳을 찾아내는 방법은 뭘까요? 둘째로 큰 건물이라구요? 아쉽게도 아닙니다. 바로 처마 위에 용마루가 없는 건물입니다.

왜냐구요? 용(龍)은 대대로 왕을 상징합니다. 왕자 역시 왕의 아들이니 용이라고 할 수 있죠. 왕비가 임신을 하면 어떨까요? 몸 안에서 용이 자라는 셈이죠.

그런데 지붕 위에 용이 있으면, 몸 안의 용이 기(氣)를 제대로 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궁에서나 용마루가 없는 건물이 바로 중궁전입니다.

하나만 더 할까요? 이 중궁전 앞에는 청동으로 된 큰 그릇 두개가 좌우에 떡 놓여 있습니다.

웃을지도 모르지만 화마(火魔)를 쫓기 위한 것입니다. 공중에서 내려오던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망가라고 말이죠. 이런 발상이 지혜롭지 않습니까? 물론 소화용 물을 담아놓는 실용적인 구실도 했겠지요.

이처럼 선조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편린들이 고궁에 고이 배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찾아내세요. 필요하면 도우미가 뛰어갑니다.

각 궁궐에는 '궁궐 지킴이' 와 '궁궐 길라잡이' 가 있거든요. 매주 토요일(경복궁.창경궁.덕수궁: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2시, 오후3시)과 일요일(덕수궁:오후 1시30분, 오후 3시)에 무료 안내가 있습니다.

물론 '서울시티투어버스' 는 이 모든 궁궐 앞을 거쳐갑니다. 시내순환코스는 25분, 고궁코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용차가 없다면 찾기 힘든 곳이 남산이죠. 남산 국립극장이 그래서 더욱 멀리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서울시티투어버스' 를 이용하세요. 숲속 국립극장에서 저녁공연을 관람하고 버스에 오르면 남산타워로 갑니다.

서울의 야경은 공연의 여운을 몇번이나 곱씹게 만듭니다. 기사 아저씨는 "커플승객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데이트코스" 라고 슬쩍 귀띔합니다.

아니면 버스를 타고 대학로로 가는 코스도 권할 만합니다. 넘쳐나는 카페와 젊은 풍경에 미리 주눅들진 마세요. '젊은이들만의 거리' 라는 선입관은 금물입니다. 대학로의 진짜 얼굴은 여기저기 포진한 소극장들에 있으니까요. 객석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헉헉" 거리는 배우의 숨소리를 바로 앞에서 듣는 일. 좁은 공간에서 두시간 동안 배우들과 같이 한다는 느낌. 순간, 여러분도 연극의 일부가 됩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뮤지컬 한편을 골라 들어가는 것도 괜찮겠지요. 연극이라고 모두 무거운 주제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없이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짠한 작품도 있으니까요.

공연 정보는 마로니에 공원 앞 티켓박스(02-744-8055)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랑 티켓' 을 이용하면 더욱 싸게 공연을 보실 수 있답니다.

러리 혹은 미술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장소인가요?

지난 5일 오후 2시. 덕수궁 앞에서 '미술관 순회버스' 에 올랐습니다. 좌석이 30개인데 반 가량 찼더군요.

"엄마, 다음은 무슨 미술관이야□" 하며 재잘거리는 초등학생 꼬마들. 동창회 모임을 할 때마다 미술관 버스에 오른다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딱히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초여름, 바람을 가르며 버스는 미술관을 순례했습니다. 교양과목 리포트 작성에 필요한 자료수집에 나섰다는 이소영(18.여.국민대 사회과학부 1년)양은 "좀 전에 성곡미술관에 들렀어요. 버스가 1시간 간격이라 너무 편해요. 전시회 감상이 끝날 때쯤이면 다음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라며 숨은 보물이라도 찾은 표정입니다.

얼마 후 버스가 멈춘 곳은 태평로의 로댕갤러리 앞. 승객들은 대부분 내렸습니다. 입장료는 4천원(일반 기준). 1천원에 구입한 버스 승차권을 내밀면 대부분 미술관이 50%까지 할인해 주더군요.

미술관 문을 열자마자 "와!" 하고 쏟아지는 감탄사. 30년간 작업에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로댕의 '지옥의 문' 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얻는 감동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날 전시회는 '구본창 사진전' 이었죠. 그림을 무색하게 하는 사진 작품들이 금방이라도 벽에서 튀어나올 듯 하더군요.

마침 도슨트(Docent.작품설명가)의 안내 시간이었습니다.

이혜인(동덕여대 대학원생)씨의 자세한 설명에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특히 작가의 부친이 임종하기 직전에 숨 쉬는 입 모습을 찍은 작품 '숨' . "삶과 죽음의 간격이 가장 극명하게 부각되는 순간" 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탄성을 질렀죠.

가슴이 '싸~아' 해지는 느낌. 미술관을 찾는 매력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가나아트센터가 운영하는 미술관 순회버스는 한시간 간격으로 시내에 있는 13개의 미술관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단, 월요일은 휴관하는 미술관이 많아 두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버스 티켓 한장이 당신의 일상을 촉촉히 적십니다. 벌써 주말이군요. 어때요? 이번 주말엔 버스여행을 떠나보세요. 버스표 한장이 답답한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당신을 구해줄지 모르잖아요.

글=백성호 기자

사진=최승식, 그래픽=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