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풍이 통치권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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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소장파들의 정풍(整風) 여진이 계속되면서 여권 전체가 내홍을 겪고 있다. 성명 파동을 주도했던 소장파 12명은 인적 쇄신을 거듭 요구하고 있는 데 반해 당 지도부와 동교동계는 이를 '통치권에 대한 도전' 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쌍방의 기세로 볼 때 정면 충돌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여당의 내부 갈등이 정치 발전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점차 계파 싸움으로 변질되는 느낌이어서 실망스럽다.

소장파들은 '쇄신 모임' 이란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모이겠다고 했다. 13일 발표될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 쇄신책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전폭 반영되도록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도다.

소장파들이 전례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金대통령이 최고위원 회의에서 제시한 해법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라고 이해된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 이라며 인적 쇄신 요구에 소극적인 모습이었고, 당 우위 체제 등 시스템 변화를 약속했지만 국정 운영 전반이 잘못됐다는 민심의 지적에는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소장파들로서는 정풍 운동이 미봉책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

소장파들의 행동에 가장 불쾌한 쪽이 당내 최대 계파인 동교동계 구파라고 한다. 정풍파 의원 사무실 점거.계란 던지기 같은 '설욕책' 들이 논의될 정도라니 험악한 분위기가 짐작된다. 비선정리니 인적 쇄신이니 하는 정풍파의 주장이 다름 아닌 동교동 가신(家臣)그룹을 지칭한 것이니 당사자들로서 반감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같은 이야기가 나오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숙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정풍파의 고언(苦言)을 계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발끈하는 모습이야말로 털어버려야 할 패거리 행태다. 특히 가신 그룹에 속한 김옥두(金玉斗)의원이 "13일 이후에도 집단행동을 하면 모든 것을 밝히겠다" 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듯한 자세는 정말 볼썽 사납다.

정풍 운동이 정권의 거듭나기에 보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정권 실세들이 이를 얼마나 대승적 입장에서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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