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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동료 구하지 못했다고 생존 병사들 구조된 직후 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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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들은 구조 직후 울었다. 함정 뒷부분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구하지 못하고 살아서 미안하다며….”

해경 경비함정 501함(500t급) 고영재(55·사진) 함장의 말이다. 그는 26일 오후 10시15분 천안함 사고 현장에 출동해 생존 장병 58명 중 장병 56명을 구했다. 생존자들에겐 생명의 은인이다. 그러나 그 역시 구조된 장병들처럼 자책하고 있었다. 더 많은 장병을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다. 26일 현장 출동 이후 나흘 동안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구조활동을 하다 29일 밤 경비함정 503함과 교대하고 인천항으로 귀환했다. 그는 30일 오전 1시쯤 기자를 만났다. 지치고 죄송한 표정이었다.

-구조를 마친 심경은.

“인간으로서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었다. 마음이 무겁고 실종자를 찾지 못해 미안하다.”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상황은.

“대청도 근해에서 해상 근무 중이던 26일 오후 9시43분쯤 해경 상황실 비상연락을 받고 출동했다. 도착했을 때 천안함은 약 3분의 2 정도 침수되어 함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90도가량 기울어져 있었고 승조원들은 함수 부분 포탑과 조타실 등에 전부 몰려 있었다. 고속단정을 내려 오후 10시30분부터 구조작업 시작했다. 구조 30분 후 함수 부분에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가라앉았다.”

-선체가 두 동강 나 있었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구조 당시 승조원들의 상태는.

“일부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작업복이나 근무복을 입은 승조 원도 많았다. 물에 젖은 사람은 없었고 피를 흘리는 사람도 가벼운 찰과상 정도여서 501함으로 옮겨와 소독치료를 받았다. 부목을 대고 있거나 붕대를 감은 사람은 없었다.”

-구조 당시 ‘도와 달라’ ‘여기 있다’ 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던데.

“배가 반쯤 가라앉고 침수되는데 어떻게 긴박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군인이기 때문에 침착하게 질서를 지켰던 것 같다. 물에 뛰어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해군 함정은 무얼 하고 있었나.

“해군 함정 4척이 서치라이트를 켜고 승조원 전원이 갑판 위에 나와서 구명볼 등 구명장비를 들고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가 3m 정도로 높고 선체가 직각으로 기울어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원일 함장은 마지막으로 구조된 것이 맞나.

“오후 11시40분쯤 마지막으로 구조돼 501함 내에서 40분가량 있었다. 이후 해군 고속정으로 옮겨가 바다 위의 표류자 등을 찾기 위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안다.”

-최 함장이 501함 내에서 생존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는 일부 보도도 있던데.

“함장과 장교들은 사관실에, 승조원들은 식당에 격리했기 때문에 서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5차 구조 후에도 수색은 계속됐나.

“해군 고속정과 함께 27일 오전 2시30분까지 (표류자 등을 찾기 위한) 수색을 계속했다.”

-5차 구조를 마친 다음에 생존자가 더 없을 거라고 판단한 근거가 뭔가.

“천안함 함장이 최종적으로 다 점검을 마치고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다.”

-천안함 함장이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고 정확히 말했나.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따로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함장이 마지막으로 나온 것으로 안다. 우리가 판단한 것은 아니다.”

-사고 해역에서 한·미 독수리훈련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달 받은 적이 있나.

“들은 바 없다.”

-구조된 승조원들은 어떤 말을 했나.

“특별한 말은 없었고, 일부 승조원이 천안함을 빠져나오지 못한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다.”

인천=임주리·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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