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 발견 20년…국내 1,350명 감염

중앙일보

입력

1981년 6월 5일 미국 의료진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는 5명의 남성 동성애자들에게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질병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이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에이즈로 불리는 이 질병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전세계 5천8백여만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2천2백여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21세기 흑사병, 에이즈의 20년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현실과 예방대책을 알아본다.

◇ 외국의 감염실태=현재 에이즈가 가장 극성을 부리고 있는 곳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 총인구의 15~36%가 이 병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로 높은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어느 지역이든 에이즈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 재앙은 세계 곳곳에서 맹위를 떨쳐 하루에도 1만6천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에이즈 환자 감염률이 0~0.5%에 해당하는 비교적 안전한 국가.

문제는 아시아지역의 감염률이 급속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UNIDS 부총장은 지난 4월 23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경제이사회에 참석, "강력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향후 10년 이내 아시아의 에이즈 환자수가 아프리카를 능가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한해 아시아에서만 90만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했고 49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 국내 감염실태=우리나라에선 85년 에이즈감염자가 처음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1천3백50명이 에이즈 감염자로 공식 확인됐다. 감염자의 87%인 1천1백80명은 남자였으며 연령별로는 20, 30대가 가장 많아 65%를 차지하고 있다. 감염자 중 3백2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단순 감염상태에서 증상이 나타난 환자로 등록된 사람도 2백9명에 이른다.

주된 감염경로는 성접촉으로 이 중 국내 이성과의 성접촉에 의한 것이 4백98명으로 가장 많고, 동성애를 통한 감염이 3백15명, 국외 이성과의 감염도 2백97명이나 된다. 수혈이나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자는 38명에 불과하며, 95년 이후에는 전무하다. 감염사례도 다양해져 88년 2월 부부가 함께 에이즈에 걸린 사례가 처음으로 확인됐으며, 95년 3월 에이즈에 걸린 여성이 임신해 태아를 감염시키기도 했다. 99년 여고 2년생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줬으며 올해에도 10대 두명이 감염자로 추가 확인됐다.

◇ 문제점〓현행 국내 에이즈관리의 문제점은 감염자의 신분이 보건소 등 국가기관에 실명으로 등록돼 관리된다는 점. 등록자는 칵테일요법을 비롯한 에이즈치료를 전액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50%는 건강보험, 25%는 국가, 25%는 지방자치단체) 주소지를 옮길 때마다 통보해야 하며 3개월마다 한번씩 보건소 직원의 상담을 받아야 하는 등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관우 사무총장은 "한국의 전문직종이나 연예인 등 신분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검사를 위해 일부러 일본 등 외국을 찾고 있다" 며 "실제 최근 한국인 환자에게 통역서비스를 실시한 일본인 통역 자원봉사자에게서 자신이 통역을 맡았던 17명의 한국인 중 3명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이란 말을 들었다" 고 밝혔다.

현재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추후 치료를 위해선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의사가 의무적으로 1주 이내 신고해야 하며 이들은 실명으로 국가의 관리체계 아래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등록자 외에 물밑에 숨어 있는 감염자 숫자가 서너배 이상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립보건원 방역과 이종구 과장은 "현행 에이즈관리체계가 다른 국가에 비해 엄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1백만명이 넘는 태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가장 성공적인 에이즈 관리가 가능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에이즈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익명으로 일반병의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종관 기자, 홍혜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