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진실-최진영 앞서 요절한 스타남매 장현-장덕 공통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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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오후 2시께 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자택에서 숨졌다. 최진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1년 5개월만의 일이라 팬들의 상심은 더욱 컸다. 이에 20년 앞선 1990년 연이어 요절한 스타 남매가 있어 새삼 관심을 모은다. 국민가수로 사랑받은 ‘현이와 덕이’다. 국민배우 남매 최진실-최진영의 죽음에 앞선 국민가수 남매의 죽음이다.

故최진실은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데뷔했다. 이어 동생 최진영은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다. 비슷한 시기 함께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진실에 비해 최진영의 연기 활동은 주춤했다. 이어 1999년 최진영은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했으며 가요 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동생의 새로운 도전에 최진실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진영이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2000년 최진실은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했다. 최고의 스타의 결혼이니 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 대중의 축복 속에 결혼하지만 최진영이 ‘스카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 2004년 최진실은 이혼했다. 최진영의 마지막 앨범 역시 이전 앨범보다 못한 반응을 보였다. 최진실의 이혼 후 동생 최진영은 누나와 함께 조카들을 돌보는데 몰두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은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어 1년 5개월 만인 2010년 3월 “조카들에게 멋진 삼촌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복귀하겠다”던 최진영 역시 자택에서 숨졌다.

‘현이와 덕이’의 장현과 장덕 역시 남매 사이다. 19세, 14세의 나이에 듀엣가수로 데뷔한 두 사람은 ‘순진한 아이’‘꼬마인형’‘소녀와 가로등’등 히트곡을 낳으며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여동생 장덕은 히트곡들을 직접 만드는 등 천재음악소녀로도 이름을 떨쳤다.

장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 중매로 만난 남자와 결혼하지만 금세 이혼했다.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음악공부에 전념 후 한국으로 돌아와 솔로 앨범을 내지만 결과는 실패.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장덕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역시 오빠인 장현이다.

두 사람은 다시 ‘현이와 덕이’로 모여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날 찾지 말아요' 등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장덕은 작곡가로도 유명세를 탔다.

순탄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오빠 장현의 지병. 장현이 설암(혀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오빠의 암투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장덕은 약물중독에 빠졌다.

결국 장덕은 1990년 2월 서른이 안된 꽃다운 스물여덟살 나이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요절했으며 6개월 만인 8월 장현 역시 여동생을 잃은 슬픔으로 지병이 악화돼 35살에 타계했다. 대중에게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남아있던 ‘현이와 덕이’이기에 팬들의 슬픔은 더했다.

故최진실-최진영 남매는 대중매체를 통해 각별한 우애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현이와 덕이’로 활동한 장현-장덕 남매의 우애 또한 각별했다. 깊은 애정을 가진 남매이자 같은 일에 전념해 온 동료로서 일생을 함께 해온 남매의 운명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한몸과 같이 닮았다.

[뉴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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