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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합과 화해 추구해야할 미국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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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확정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고 백악관 측이 사실상의 승리 선언을 했다. 승패를 결정지을 오하이오주의 개표가 진행 중이고 존 케리 측이 패배를 시인하지는 않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개표 추세를 보면 '전쟁 중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미국의 선거 역사가 또다시 반복될 것 같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이미 상.하 양원에서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공화당이 기존의 의석을 더욱 늘린 데 힘입어 부시 집권 2기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외교정책이 지난 4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대통령 선출과 상관없이 미국 대외 정책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상.하원을 미국 공화당이 계속 장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국제 이슈에 대해서도 미국이 기존의 6자회담 틀을 고수할 것이며 각종 현안에 대한 일방주의적 경향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미국의 여론과 신임 행정부의 속내를 정확히 읽고 한동안 소원했던 한.미 간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은 지난 4년간 일방주의적인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외교적 손실을 입었다. 미국에 대한 선호가 부시 정권 때처럼 전 세계적으로 낮게 나타난 예도 없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초미의 관심이었다. 이 때문에 부시가 집권 2기를 연다면 미국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반영해 유엔 등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동맹국들과도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동맹국들을 좀더 배려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외 정책에 반영해야만 과거의 일방주의적 미국의 행태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 미국이 현재 이라크에서 겪는 어려움에서 보듯 동맹국들의 도움없이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 이슈들이 많다.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불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이 때문에 새롭게 구성될 미국 행정부가 부시 1기의 일방주의와 달리 협력적 대외 정책을 추진해 미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로 나서길 기대한다.

이번 선거처럼 전 세계의 관심이 미국에 집중된 적이 없었다.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이라크를 비롯한 테러리즘과의 전쟁, '감세 문제, 줄기세포 연구 및 동성애 결혼 금지 등 모든 이슈는 사실상 미국 내 이슈이면서 전 세계적 이슈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현재의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세계가 지구촌 내 네트워크로 과거보다 훨씬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소위 공화당 강세지역인 레드(red)지대와 민주당 강세지역인 블루(blue)지대 간의 간극은 과거 인종과 이슈의 용광로이던 미국 사회 통합의 에너지를 상당부분 잠식했다. 각종 이슈에 대한 중간층이 사라지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여기다 세대 간, 도.농 간, 계층 간 갈등 또한 과거보다 훨씬 첨예해졌다. 이 때문에 새 대통령은 미국 사회의 통합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통합, 국제적으로는 화해를 통해야만 미국의 세계 리더십이 회복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세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번영을 가져올 것이다. 이번 미국 선거를 계기로 미국과 전 세계가 한층 더 성숙해지고 화해를 통한 진전을 이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