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FIFA 축구대회 휘슬 부는 대학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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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국제대회는 축구인들에겐 꿈의 무대다. 비단 선수들만이 아니다. 전 세계 수만명의 축구 심판도 한결같이 FIFA 무대를 동경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심판 홍은아씨는 행운아다. 겨우 스물네살에 그 꿈을 이루게 됐다. 홍씨는 오는 10일 태국에서 개막하는 세계 여자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한국 주심으로는 유일하게 FIFA의 부름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4명, 세계적으로 13명의 주심이 참가해요. 국제심판 경력과 그 해 심판 내용을 보고 FIFA가 초청하는 거죠. 국제경기는 이제까지 열차례 맡았는데, 무난하게 진행했던 게 점수를 딴 것 같아요."

홍씨의 행운은 그가 전업 심판이 아니란 점에서 돋보인다. 홍씨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학업 틈틈이 주말이나 방학 때 축구 주심을 본다. 국내에선 흔치 않은 '겸업 심판'이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심판을 보는 것도 이례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지만 공부도 포기하기 싫었어요. 제 일을 하면서 축구와 인연을 맺고 싶어 국제심판에 관심을 갖게 됐죠."

1999년 이화여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홍씨는 그해 12월 신입 심판 교육을 받고 2급 자격을 얻었다. 이듬해 영국 리버풀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동안 1급 자격을 받아 '축구 종가'에서 스물다섯번이나 심판을 봤다.

국제심판의 꿈이 구체적으로 여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국제심판 통역을 하다가 '외계인 심판'으로 불리는 피에루이지 콜리나(이탈리아) 주심을 만났다.

"그라운드의 카리스마가 생활에서도 느껴지는 분이었어요. '국제심판이 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열심히 해서 꼭 꿈을 이루라'고 격려해 주셨죠."

마침내 지난해 1월 국제심판 자격을 따냈다. 영어 규칙시험과 영어 구술, 체력 측정 등 까다로운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다. 국내 최연소였다.

90분 경기를 선수들과 함께 뛰려면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홍씨는 매일 2시간30분씩 헬스와 달리기를 한다. 영어는 수준급이고, 일어와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 FIFA 무대에 서기까지 이 같은 노력과 실력이 받쳐줬음은 물론이다.

홍씨는 "국제심판으로서 스포츠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박사 과정(스포츠 경영학)까지 밟을 계획이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심판을 보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5일 방콕으로 떠난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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