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신경림 '돌 하나, 꽃 한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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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 신경림(1935~ )의 '돌 하나, 꽃 한송이'

시인은 무엇에 홀린 듯 떠돌며 살아온 시간과 그 치기 어린 종횡무진의 공간을 돌아본다. 세월의 깊이가 시의 깊이로 전이되는 것은 마지막 두 행에서다. 하찮은 돌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그 경계에, 인생이 있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의 갈등이기도 할 것이다.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는 사이에 세월은 간다. 시인의 혜안이 녹아 있는 시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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