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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표식’이라 부르면 간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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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지난 연말 아파트 등의 초인종 옆에서 ‘α’ ‘β’ ‘x’ 등 요상한 표시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그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범죄를 실행하기 위한 표시가 아니냐며 공포가 확산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표식 괴담’이다.

이때 ‘표식 괴담’이란 이름이 붙었듯이 어떤 표시를 가리킬 경우 ‘표식’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표식’이 아니라 ‘표지’가 맞는 말이다. ‘표지’ 대신 ‘표식’이란 말을 쓰기 십상인 것은 ‘표지’의 한자를 잘못 읽는 데서 유래한다.

‘표지’의 한자는 ‘標識’다. 언뜻 ‘표식’으로 읽기 쉽다. 그러나 ‘識’은(는) ‘표시하다’는 뜻일 때는 ‘지’로, ‘알다’는 뜻일 때는 ‘식’으로 읽는다. ‘標識’는 무엇을 알리기 위한 표시라는 뜻이므로 반드시 ‘표지’로 읽어야 한다. ‘표식’은 없다. 따라서 도로표지·안내표지판 등처럼 ‘표식 괴담’도 ‘표지 괴담’이라 해야 한다. ‘식’으로 읽히는 경우는 지식(智識)·상식(常識)·식견(識見) 등이 있다.

북한에서는 특이하게도 우리의 ‘표지’에 해당하는 의미로 ‘표식’이란 말을 쓴다. ‘상호간’을 ‘호상간’, ‘개고기’를 ‘단고기’, ‘이해’를 ‘요해’라고 하듯이 ‘표지’를 ‘표식’이라 하는 사람은 간첩인 셈이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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