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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양심고백과 인간의 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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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은 누구나 이성과 양심을 갖추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양심의 소리다. 양심의 법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이 양심의 명령을 거슬러 거짓을 일삼고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다.

양심고백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고 참회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인간성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朴正熙) 군사정권의 유신체제 이후 폭압정치가 계속되면서 이른바 양심선언을 통해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며 인권의 존중을 촉구하고 참회하도록 유도한 분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분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 민주화의 길을 걷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의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한다. 전두환(全斗煥) 군부세력의 야욕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의 항거를 무력으로 짓밟은 것은 전자이고, 이를 통해 인간의 양심과 정의를 일깨워준 것이 후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당시 발포 명령자의 책임소재도 밝히지 못한 채 그 희생자에 대한 보상으로 마무리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진압군에 의해 일반 시민이 사살되고 암매장됐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우리 위원회에 5.18 당시 네명의 시민에게 총격을 가해 그 중 한 명이 죽어 암매장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특전대원 한 분이 양심고백을 하고 조사관의 조사로 그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5월 18일 나는 그 대원을 만나 그의 용기 있는 양심고백을 크게 평가하고 우리 사회에 등불을 밝힌 소중하고도 값진 일임을 들어 감사했다.

그는 당시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라 무고한 시민을 폭도로 간주, 사살해 암매장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유족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며 자신도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의문사 관련 당사자의 양심고백과 제보를 바라는 위원회의 홍보물을 보고 여러 날 고민하다마침내 기회가 생겨 양심고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이웃과 동료들에게 얘기했더니 "너 미쳤어? 세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 는 핀잔을 듣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골이 깊은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밝은 앞날을 위해서도 하루 속히 시정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고 나니 "아주 마음이 편하고 그 유족에게도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다는 느낌이 든다" 고 숙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이런 고백은 이 혼돈의 시기에도 양심의 등불은 결코 꺼질 수 없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참으로 값진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양심선언은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회병리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를 폭로하는 것이고, 양심고백은 자신이 지은 잘못을 뉘우치고 이를 알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참회하고 고백해 진실을 밝히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양심선언이나 양심고백은 다 같이 행위자가 양심의 소리에 응답하는 용기 있는 행위로서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다.

20여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특전대원의 양심고백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고,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죄를 짓고 양심의 고뇌를 묻어두기보다 이를 밝혀 마음의 평화를 얻고 화해하는 것이 참된 삶의 길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면서 양심에 따라 언제나 새롭게 살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제 잘못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인간다운 양심고백이 계속 이어져 의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희망찬 앞날이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양승규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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