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제임스 본드 세대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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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총 잘 쏘고, 운전 잘하고, 비밀을 간직한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데 뛰어난 것만으론 더 이상 훌륭한 스파이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영국 국내정보국(MI5)의 조너선 에번스 총괄국장은 최근 영국 의회의 정보·안보 위원회에서 “인터넷 사용 능력이 떨어지는 요원들을 걸러내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발적·강제적 퇴직 프로그램이 곧 가동된다”며 “일부 요원은 더 이상 우리와 미래를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퇴출 프로그램은 인터넷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내부 요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첩보 활동을 하는 일반 요원에게도 적용된다. MI5는 영국 내에서의 테러 활동 감시와 산업 기밀 유출 방지 등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영국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동향 파악과 중국·러시아 등의 산업 스파이를 색출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MI5는 지난해 “국내에 약 2000명의 밀착 감시 대상이 있다”고 밝혔다. 영국은 외국에서의 정보 수집은 해외정보국(MI6)이라는 별도의 첩보 기관에 맡기고 있다.

에번스 국장의 발언 뒤 영국 의원들은 “제임스 본드 세대는 이제 끝났다”는 농담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임스 본드는 MI6 요원을 모델로 한 ‘007 시리즈’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국 언론은 ‘트위터’(인터넷 단문 메시지 서비스)나 ‘페이스북’(인터넷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을 통한 정보 수집 능력이 첩보 활동에 필수적인 시대가 됐다고 논평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감시 대상의 움직임과 주변 인물을 파악하는 데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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