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이색모임] 광주 '샤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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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2일 저녁 광주 증심사 가는 길의 레스토랑 '노스텔지아'.

여남은 남녀가 포도주 잔을 기울이고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아주 즐거운 표정들이었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점잖은 분위기였다.

이들은 광주에서는 대부분 이름이나 얼굴이 꽤 알려진 인물들이다.

광주기독병원 치과과장을 지낸 박용세(69)씨와 MBC 제작국장 ·광주MBC 사장을 지낸 김포천(67 ·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이사장, '가족 이야기 연작'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황영성(60)조선대 부총장,T.S.엘리어트를 특히 좋아한다는 영시 전공의 이준학(57)전남대 영문과 교수, 한국화가인 양계남(56 ·여)조선대 미술관장,여자로서 처음으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을 맡아 화제가 됐던 김원자(53)호남신문 논설실장.

그리고 감성이 청소년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형석(52)전남대 음악학과 교수와 그의 부인으로 모임 총무인 김용진(49)씨.

또 고재유 광주시장의 부인인 간문자(44)호남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와 조류의 질병에 밝은 강문일(44)전남대 수의학과 교수,광주시 문화예술과장을 지내고 미국 연수를 준비 중인 신광조(44)공무원교육원 교육운영과장.

이들 열한 명은 3년 전부터 한달에 한번꼴로 '샤펠'이란 모임을 갖고 있다.대개 음악 전공자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만난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날엔 인근에 사는 이형석 교수의 아파트로 가 다시 자리를 이어간다.

주로 음악을 얘기하고 폭 넓게 문화예술과 이와 관련된 지역문제 등을 화제로 삼다보면 금세 밤이 깊어진다.흥에 취하면 시를 읊는 사람도 있다.몇달 전 모임에서는 이형석 교수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가 '황성옛터' 등을 연주해 다른 손님들까지 즐겁게 해줬다.

모임이 만들어진 사연도 이채롭다.17년 전 9살짜리 광주 꼬마가 바이올린을 들고 벨기에로 유학 가 1998년 명문 음악학교에 들어갔다.세계 유일의 왕실 음악기관인 '라 샤펠 뮤지컬 렌느 엘리자베드'였다.

그리고 그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자며 광주에서 몇몇이 뜻을 모아 모임이 시작됐다.그 청년이 이 교수의 아들 경민씨(26)씨.

'샤펠'(Chapelle ·채플의 佛語)이란 모임 이름도 그 음악학교의 이름에서 땄다.

이같은 연유로 '샤펠'은 벨기에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한다.벨기에 국립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조지 옥토스를 3년째 해마다 광주로 초청,연주회를 열었다.

그간 광주를 다녀간 벨기에의 유명 음악인이 4명.지난해엔 주한 벨기에대사 부부를 초청하기도 했다.

'샤펠'은 이 교수가 꾸리는,광주에 하나밖에 없는 체임버오케스트라 '몬 아므르'도 후원하고 있다.

김원자 논설실장이나 김포천 이사장이 모임을 이끈다.

김 이사장은 "편하게 만나는,음악을 사랑하는 멋쟁이들의 모임"이라며 "광주와 벨기에 브뤼셀 사이의 가교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글=이해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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