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국책사업] 졸속입안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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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다수 국책사업은 '결론에 맞춘 타당성 조사→사업 예측 실패→계획.설계 변경→사업비 급증→공사 지연' 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전문가들은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첫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게 중요한 만큼 합리적이고 정밀한 계획수립이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국책사업 매뉴얼을 만들자=비용 및 편익 분석, 사회적 가중치 계산, 재원조달 계획, 의견수렴, 투자 우선순위 조정 등 부문별로 매뉴얼을 표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를 통해 경제성과 주민편익에 충실한 계획을 세우자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 박현 박사는 "사업추진 주체별로 제각각인 현행 관리시스템을 표준화해 사업평가 및 비교가 가능하게 만들면 불합리한 정치 논리나 부처 이기주의의 개입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 타당성 조사의 내실화=주무부처에서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사업 타당성 조사는 '통과 의례' 로 불릴 만큼 그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획예산처가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지나치게 적은 예산(건당 평균 조사비용 8천만원)과 짧은 조사기간(5~6개월 이하) 때문에 부실 위험은 아직도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용역비를 현실화하고, 기본계획 수립기간을 대폭 늘려야 한다" 고 지적한다. 충북대 박병호(도시공학)교수는 "예비 및 본 타당성 조사과정에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한 뒤 이들이 실제로 조사를 주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 계획단계부터 견제장치 마련=국토연구원 윤하중 박사는 "정부 부처가 대형 공공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측되는 사업 성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민자 유치가 활성화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업 평가기관을 다양화하고▶민간참여를 유도하며▶정보를 공유해 사업이 한쪽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왕세종 박사는 "일본.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국책연구기관.민간 연구소.외국업체가 경쟁적으로 사업성을 평가해 다양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여가고 있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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