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태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국의 5대 명산(名山)을 일러 '오악(五岳)' 이라 한다.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중악(中岳)을 더해 다섯개다.

산둥(山東)성에 있는 태산(泰山)이 동악이면 산시(陝西)성에 있는 화산(華山)이 서악이다. 후난(湖南)성의 형산(衡山)은 남악, 산시(山西)성의 항산(恒山)은 북악이고, 허난(河南)성의 숭산(嵩山)은 중악이다. 이중 단연 으뜸으로 치는 산이 태산, 곧 동악이다.

태산은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대해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한 영산(靈山)이다. 진시황을 비롯해 한무제, 당고종, 후한의 광무제, 위나라의 명제, 송나라의 진종에 이르기까지 72명의 황제가 제후들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권한을 하늘로부터 위임받는 의식이다.

『논어』에 보면 노나라의 일개 대부에 불과한 계씨(季氏)가 태산에서 여(旅)제사를 지냄으로써 예를 참람하자 공자가 제자에게 한탄하는 구절이 나온다.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아무나 올라가 천하대권을 논할 장소가 아니라는 뜻일까.

4박5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어제 귀국한 민주당의 김중권(金重權)대표가 중국에 도착한 다음날 찾은 곳이 바로 태산이다. 조선 초 문인이었던 양사언(楊士彦)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시조가 암시하는 것만큼 태산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해발 1천5백45m로 우리나라로 치면 오대산 높이다.

하지만 정상까지 7천4백1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약 10㎞의 등정로는 꽤 험하고 가파른 편이다. 金대표는 "태산에 올라가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기를 쓰고 정상까지 올랐다" 는 '농담' 과 함께 "오르면 오를수록 기를 더 많이 받는 것 같았다" 고 감동을 술회했다고 한다.

태산을 오르다 비를 맞으면 '큰 일' 을 이룬다는 속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가 오를 때 비는 오지 않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야당총재 시절이던 1996년 10월 태산에 올랐고, 이듬해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미 고인이 된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도 대통령이 되기 전 태산을 등정했다. 그 때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金대표가 중국에서 국가원수급에 준하는 칙사대접을 받고 있는 동안 민주당은 정풍(整風)인지 역풍(逆風)인지 모를 뜻밖의 회오리 바람을 만나 불난 호떡집이 됐다. 소장파와 지도부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태산에 올라 기를 받은 金대표가 돌아왔으니 호떡집에 난 불을 진화하는 그의 '솜씨' 를 지켜볼 일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