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카타리나 비트, 과거 공개 요청에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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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독일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였던 옛 동독 출신의 카타리나 비트(35)가 과거 공개 문제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1984년 사라예보, 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을 2연패하며 '은반의 여제' (女帝)로 불렸던 비트는 실력이 출중한 데다 미모가 뛰어나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등 옛 동독 지도부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동안 수면 하에 잠복해 있던 비트의 과거사는 최근 한 기자가 옛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의 문서를 관리하는 가우크위원회에 그의 사생활을 기록한 문서의 공개를 요청하면서 다시 '뜨거운 감자' 가 되고 있다.

그를 밀착 감시했던 슈타지 요원들이 작성한 이른바 '비트 문서' 는 모두 8권, 1천3백54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의 사생활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미 일부 공개된 '한 호텔방에서 미국인과 7분간 함께 있었던 일' 과 옛 동독 권력자들과의 관계 등 민감한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가로 변신한 비트는 이에 맞서 지난 25일 베를린 행정법원에 이 문서의 공개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트는 28일자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서들은 나의 일기장같은 것" 이라며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대해 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고 토로했다.

98년 1백만달러(약 13억원)를 받고 플레이보이지의 누드모델로 나와 화제가 됐던 비트는 현재 코카콜라.듀퐁.CBS방송.슈바르츠코프(머리 염색약 제조회사) 등에서 연간 5백만마르크(약 30억원)의 광고료를 받고 있다.

일부에선 옛 동독 정권의 온갖 특혜를 받은 비트의 행적을 드러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그 역시 희생자인 만큼 굳이 과거를 공개해 타격을 줄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동정론도 만만찮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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