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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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9. 경제팀에 대한 고언

1993년 여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그만둘 때 나는 행내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이임 인터뷰를 했다. 그 때 나는 "내 몫의 돌을 착실하게 쌓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언젠가 몽골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언덕에 우리나라의 성황당 같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늘어뜨린 줄에는 헝겊조각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돌무더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무수한 길손들이 그 곁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걸음을 멈추고 정성스레 작은 돌 하나를 돌무더기 위에 올려놓고 나서 몇 바퀴 돌며 절을 했을 것이다. 자기가 올려놓은 돌 때문에 행여 돌무더기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나름대로 확실하게 올려놓았을 것이다. 덤프 트럭으로 한꺼번에 실어다 쏟아부은 게 아니었다.

지금의 심정도 그때와 같다. 한국경제라는 성황당 고갯길에서 나에게 주어진 작은 역할이었던 내 몫의 작은 돌 쌓기를 제대로 했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 나는 더 발전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정부에 있는 동안 나는 후배들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확정되고 나면 그 계획은 잊어버려라" 고 말했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문제점이 드러나 대책을 세워야 하거나 잘 돼도 초과 달성이기 일쑤였다.

이른바 개혁이란 한두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금융실명제.의약분업 등 준비가 안된 개혁과 설익은 이상론에 대해 그만하면 우리는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 이제 그런 백일몽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경제란 돌고 돌게 돼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원리이다. 관건은 길게 내다보고 정부의 규제 없이도 개방된 경제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규제 강화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외환을 관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경제팀의 팀워크이다. 부총리를 중심으로 팀워크가 잘 이루어지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 정부는 부실기업이라는 멍에를 다음 정권에 넘기지 말아야 한다. 이 정부의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청소작업을 끝내야 한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도 경제정책은 핵심적인 기능을 하게 돼 있다. 경제 관료들이 저마다 자기 역할을 다할 때 경제도 살아나는 법이다. 시장에 맡긴다고 면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직의 인기가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공무원은 긍지를 가질 만한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공무원의 처우가 좋아도 민간기업 사람들보다 봉급을 더 주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 한다고 밥을 굶는 것은 아니다.

결혼 전 나는 가톨릭 신자였던 아내와 함께 어려서부터 아내의 지도신부였던 박귀훈 신부를 찾아갔다. 결혼하며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됐고, 나의 부모와 누이들도 영세를 받았다. 박신부는 우리 집안으로서는 가정신부 같은 분이다.

박신부는 그 때 내 처가 될 사람에게 "공무원의 아내로서 쌀겨를 볶아먹고 살 각오를 하라" 고 말했다. 박봉이었던 나의 형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정도를 걸으면서도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공직에 있는 동안 한눈 팔지 않았고 할 말을 했지만 나는 거칠 수 있는 자리를 다 거쳤다.

나를 이만큼 키워 준 나라가 나는 고맙다. 나라를 위한 일이기에 97년 말 외환위기 때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금융대사도 맡았다.

바야흐로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열심히 뛰면 그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좋은 날들(good old days)이었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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