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꼭] "50년 집터에 집 짓게 해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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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평짜리라도 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자연녹지인 집터를 주거지역으로 바꿔주오. "

부산 도심 속 대표적인 오지인 안창마을 주민들의 한결 같은 바램이다.

동구 범일6동과 부산진구 범천2동에 걸쳐 있는 안창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내려와 산속에 집을 짓고 눌러앉으면서 형성된 마을. 그래서 9백81가구(2천9백85명)의 집이 대부분 무허가 인데다 집터의 용도도 주거지역이 아닌 자연녹지이다.

대부분 10~20평인 1층짜리 슬레이트 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는데도 수없이 고쳐 마치 누더기 같다. 그래서 주민들은 새집을 짓기 위해 수십년 동안 행정당국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왔다.

주민들은 우선 부산시에 대지 불하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드디어 마을 토지의 88%를 소유한 부산시 도시개발공사가 주민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봄부터 주민에게 땅을 매각하고 있다.

현재 60% 정도는 주민 앞으로 등기이전이 됐다. 합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주민들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건폐율이 문제가 됐다.

현행 건축법상 자연녹지에는 대지면적의 20%(건폐율)만 집을 지을 수 있어 이 건폐율로는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30평이 채 안되는 집터에 건폐율 20%로는 집이 안된다" 며 "집터의 용도를 주거지역으로 바꿔달라" 고 요구하고 있다. 주거지역이 되면 건폐율이 최고 60%가 돼 그나마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지난 3월 동구청을 방문한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에게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을 건의했다.

최월봉(崔月鳳.60.범일6동)씨는 "안창마을은 주민들이 집단으로 50년 동안 살아온 특수한 마을로 사실상 주거지역이나 다름없다" 며 "사람이 살지않는 자연녹지를 주거지역으로 바꿔달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마을이 주거지역으로 전환되면 작은 단독주택이나 이웃끼리 힘을 모아 연립주택을 지어 살 생각이다.

범일6동사무소 직원 김호연(金浩淵)씨는 "안창마을은 도심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웃간에 정이 넘치는 동네" 라며 "주민들의 숙원이 하루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부산시는 올 하반기 부산시 도시재정비계획을 다시 짤 때 안창마을 용도변경 문제를 포함시킬 방침이다.

부산시 도시계획과 김진성(金鎭盛)씨는 "부산시가 독단적으로 용도변경을 해줄 수는 없지만 주민들의 뜻이 관철될 수 있도록 의회 등에 주민들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범일6동 16통 통장인 박순식(朴淳植.55)씨는 "그 동안 주민들이 숱하게 많은 실망을 했지만 이번에는 꼭 주민 뜻대로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며 "모든 주민이 내 집을 갖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고 말했다.

글 = 정용백 기자

사진 =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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