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미당 담론' 비판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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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시인 고은씨가 미당 서정주 시인에 대해 공박하고 나선 글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역사의식 없이 권력에 안주했다" 는 고씨의 비판에 대해 시인 이근배씨는 "우리 시대 가장 눈부신 모국어의 빛살로 시의 산맥을 이룬 미당의 시를 깊이 있게 보지 못했다" 고 비판했다. (본지 5월 17자 17면, 19일자 29면). 시인 이동순씨가 작금의 미당논쟁에 대한 소감을 보내왔다.

고은 시인의 '미당 담론' 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강의시간에 제자들과 이 문제를 토론했다.

맨 앞줄의 제자가 말했다. 미당 사후에 단지 준비된 찬사만 늘어놓는 것이 시인에 대한 올바른 비평일까요? 아니면 취약한 부분을 지적하고 그것을 꼬집으며 범문단적 자극을 주려는 것이 진정한 비평일까요? 나는 망설임없이 후자의 편을 지지했다. 참된 비평이야말로 문학의 잘못된 흐름을 비판하고 그것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옆의 제자가 다른 각도에서 질문했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추억' 과 '단절' 이란 말에서도 그 느낌이 대강 전달되어 오지만, 글쓴 이는 확실히 미당에 대한 사랑과 애착에서 문제를 발단시키고 있는 듯하다.

거의 육친적 애착을 가졌던 스승 미당에 대한 사랑, 더불어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리. 그는 한국문학의 부유성(浮游性)에 대하여 반성적 화두를 던지고 싶었으리라.

맨 뒷줄에 앉았던 제자가 말했다. 우리가 평소 읽어온 미당의 시가 '국화 옆에서' 를 비롯해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몇 몇 작품에 대한 찬탄만은 아니었던지요? 거기에 대해선 참으로 할 말이 없구나.

우리는 그동안 미당 시의 전모를 보지 못했다. 아니 한 쪽 눈을 감고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었던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당 시를 정말 상투적으로 읽어왔다. 이제부터라도 친일시를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이 제대로 읽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전집이 출간되어야 한다. 분명히 잘못된 사실임을 알면서도 문학과 삶은 구별되는 것이니 그냥 덮어두자는 식의 태도는 책임회피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미당 비판에 대하여 '패륜' 이니 '부관참시' 니 하는 살벌한 표현으로 대응하는 일부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치편향적이며 소아적(小我的) 인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문학의 보다 더 큰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내 엎드리고 있던 한 제자가 돌연 기습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해방 이후 우리 문학인들이 반성에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요□ 나는 사실 이 대목에서 가슴이 조여오는 듯했다. 진실로 우리는 그러했던 것 같다.

그 어떤 선배 문인들에게서도 모범적 반성의 사례를 만나보지 못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정당화.합리화, 혹은 칙칙하게 늘어놓는 변명만 더러 보았을 뿐이다.

구석에 앉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제자가 문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미당 담론' 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이 어쩌면 우리가 식민지 잔재 청산의 실패로 말미암아 겪고 있는 업보는 아닐까요? 물론 그런 점도 다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 주범은 바로 국토와 민족의 분단이 아닐까? 남북한 양쪽에서 분단 체제에 안주하고 거기에 기생하며, 결과적으로 분단을 즐겼던 문학인들이 그 고통을 골고루 분담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미당의 문학도 이 점에선 전혀 예외가 아니다. 모든 역사적 시간의 경과 직후에는 제때에 온갖 문제들을 정리하고 낡은 것을 청산한 다음에 이후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하거늘, 우리 문학은 진지한 정리에 지나칠 정도로 인색하였다. 이런 점에서 '미당 담론' 은 우리에게 '문학사 바로 쓰기' 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자극과 경종을 일깨워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동순교수 <시인.영남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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