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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사병 숙소 함정 뒤쪽에 있어 피해 커졌을 것”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사고 이후 3시간 동안이나 떠있었다. 어뢰나 기뢰를 맞았다면 순식간에 침몰한다.”

천안함과 동일한 초계함을 제작하는 데 직접 참여한 선박 전문가의 말이다. 현재 그는 국내 굴지의 조선사 임원이다. 그는 “국방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있으니 회사 이름과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제작 경험에 비춰 침몰 원인이 무엇으로 보이나.
“사고 발생에서 침몰까지 세 시간 정도 걸렸다는데…. 조심스럽지만 어뢰나 기뢰, 미사일 공격은 아닌 듯하다. 천안함 정도는 그런 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침몰한다. 어뢰는 배를 두 동강 내놓기 일쑤다.”

-사고 순간 배가 들썩거렸다는데.
“내부 폭발이라면 배가 들썩일 가능성은 낮다. 배 밑에서 뭔가 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꼬리 부분(함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면 뱃머리 부분에 있는 사람은 배가 들썩거렸다고 말할 수 있다. 들썩거렸다는 점만으로는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다.”

-천안함 함미에는 무엇이 있나.
“76㎜ 함포가 1문 있고, 40㎜ 대공포가 1문 설치돼 있다. 포 밑에는 탄약을 공급하는(급탄) 장치와 탄약고, 자재 창고가 배치돼 있다. 그리고 병사 숙소가 있다.”

-그렇다면 탄약이 폭발했을 가능성은 없나. 미 해군에서도 선내 탄약이 폭발한 적이 있었다.
“가능성만을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포탄이 폭발했다고 배가 침몰할까?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군사 전문가들이나 군사 매니어들은 기름 증기(유증)에 불이 붙어 폭발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천안함 같은 배는 엔진이 배 가운데에 설치돼 있다.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다. 엔진은 두 종류다. 순항할 때는 디젤엔진, 고속으로 기동할 때는 터빈엔진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꼬리에 충격이 가해졌다고 하는데 엔진실이나 기름 탱크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배 꼬리에서 사고가 발생한 점을 단서로 사고 원인을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뢰는 주로 뱃머리에 타격을 준다. 배가 진행하다 건드리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사고 해역은 기뢰가 없는 곳이다. 어뢰는 배꼬리를 주로 강타한다. 어뢰는 음파를 따라오는데, 물속에서 가장 큰 선박 소음은 스크루 소리다. 스크루는 배꼬리에 있다.”

-어뢰 공격을 받았다면 사전에 알 수 있지 않나.
“천안함은 대잠·대공·대함 작전능력을 갖추고 있다. 음파탐지기가 있어 어뢰가 다가오면 바로 알 수 있다. 속도도 아주 빨라 회피 기동을 하며 함대 사령부 등과 교신하기 때문에 어뢰 공격이라면 원인은 곧바로 알려졌을 것이다.”

-함정이 노후되고 낡아 작은 사고를 견디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배는 1980년대 후반에 건조됐다. 노후됐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해군이 자체 정비해 쓰고 있다.”(천안함은 89년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했고 해군은 2020년까지 취역시킬 예정이었다.)

천안함은 ‘포항급 초계함’이다. 1번함 포항호 이후 만들어진 동급 함정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2000t급 초계함(울산급) 건조가 예산 문제로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등장했다. 1000t급이지만 무장은 2000t급으로 한다. 포항급은 한국 해군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해군이 미국 함정 의존 단계에서 벗어난 직후 우리 손으로 만든 초기 군함 가운데 주력이었다. 84년 이후 10년 사이 24척이 건조됐다. 군사 전문가들은 ‘찍어내듯 건조했다’고 말했다.

-군함 자체의 취약점은 없었나.
“어뢰나 폭뢰·기뢰 등이 배를 직접 때리지 않고 주변에서 폭발하면 충격파가 엄습한다. 군함은 주로 이 충격파 때문에 침몰한다. 천안함은 충격파를 감안해 설계된 함정은 아니었다. 예산 부족 때문이었다.”
천안함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말이다. 충격파를 감안한 설계는 한국형 구축함 1단계 사업(KDX-1)으로 광개토대왕·을지문덕·양만춘함을 만들기 시작됐다.

-완전 침몰까지 3시간여 동안 선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외부든 내부든 충격을 받은 뒤 파이프와 공기통로 등이 파손된 것 같다. 이런 틈을 타고 물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3시간 동안 물위에 떠있었다면 배 전체로 물이 밀물처럼 쏟아지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천안함의 안전성과 효율 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함정이다. 다양한 목적에 맞춰 대잠형·대공형·대함형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군함 건조 사업 가운데 아주 성공적인 시리즈였다.”
중사 이하 부사관과 병들이 많이 실종됐다. 함장과 부함장 등 장교들을 비롯해 원사와 상사 등은 거의 구조됐다. 실종자 가족 사이에선 “불쌍한 졸병들만 당했다”는 원성이 높다.

-왜 사병들의 희생이 클까.
“군함을 만들 때 함미 쪽에 대부분 부사관과 사병용 숙소를 설치한다. 천안함 사병 숙소는 상당히 널찍하다. 간이 침상을 설치해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숙소는 격벽이 없는 널찍한 방으로 기억한다. 물이 스며들면 즉시 차단해 일부만이라도 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이 배꼬리였으니 그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듯하다.”(합동참모본부 이기식 정보작전처장은 27일 국회 국방위 현안 보고에서 “(침몰 전) 방수 조치를 취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장교 숙소는 따로 있나.
“군함 앞부분 조타실 가까이에 함장 숙소를 설치한다. 바로 밑에 부장(부함장)과 장교 방이 마련돼 있다. 그 밑에 원사와 상사가 기거하는 방이 있다. 갑판을 지상으로 보면 장교 숙소는 땅 위에, 사병과 부사관 숙소는 지하에 있는 셈이다.”

-왜 그렇게 배치하는가.
“군함을 설계할 때 관행적으로 그렇게 한다. 군의 서열 구조 때문인 듯하다. 함장 등 장교 방은 창문이 있다. 장교들의 편의를 배려한 구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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