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절반 공약’ 못 지킬 거면 차라리 버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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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34면

갑자기 EBS수능 방송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지난 10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언급이 있고 나서부터다. 안 장관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의 70% 이상을 EBS수능방송과 교재에서 내겠다고 했다. 이날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EBS 사옥으로 교과부·EBS·교육과정평가원(수능 출제·관리기관)이 교류 협력을 맺기로 돼 있었다. 이 자리에는 안 장관 외에 곽덕훈 EBS 사장과 김성열 교육과정평가원장 등이 참석했다. 학부모나 수험생에게는 매우 민감한 얘기였다.

송상훈 칼럼

행사가 끝난 후 취재기자가 김성열 평가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부터 한다는 얘긴가요?”
“장기적인 얘기 아닌가요. 설마 올해부터겠어요.”
수능문제를 내는 평가원장은 모르는 얘기였다. 수능 출제기관에 얘기도 안 한 채 안 장관이 먼저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이후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같은 문제가 나오느냐는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강남구 도곡동 EBS본사에 가서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사교육을 없애자는 목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사교육을 없애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비용과 부담을 줄인다는 목적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너무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해서 학생들의 창의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안 장관이 이렇게 서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교육비 절반 줄이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다. 올해 많은 대학이 채용한 입학사정관제에 역점을 두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에도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2009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는 사교육비가 느는 추세는 좀 주춤해졌지만 절대액수는 여전히 늘고 있다.

정부의 조급증을 지켜보는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하다. EBS수능방송의 수능 출제비중을 늘린다는 얘기는 6년 전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안병영 교육부 장관 때다. 그때는 반영비율을 얼마로 높이겠단 얘기는 없었다. 교재 판매는 느는 듯했지만 교재비는 또 다른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져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정부가 이번에 다시 EBS수능 반영 비율을 들고 나온 것은 수능시험 비중을 줄이고 대입을 입학사정관제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면 수능 과외가 줄고 다시 사교육비 부담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계산이다.

EBS 교재가 115종류나 되고 그중에서 골라본다고 해도 족히 30~40권은 봐야 수능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걸 모두 보느니 그냥 하던 공부하겠다는 학생이 나올 거 같다. 틈만 나면 파고드는 사교육업체의 특성을 감안하면 EBS 교재를 가르치는 과외가 생길 법도 하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수험생들이 입시를 위해 EBS만 쳐다본다면 공교육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벌써 뜻있는 교사들은 정부가 공교육에 또 상처를 주려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처럼 TV 앞에 앉아 시험 성적 높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창의력을 훼손하지 않는 교육’은 아니다.

정부는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대입을 치르는 2014년부터 시행할 수능개편안을 준비 중이다. 3월 말께 발표할 예정이라는데 지금 같아선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수능 과외를 줄이려면 보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여러 차례 나온 얘기지만 미국 SAT와 같이 수능을 자격시험화하는 건 어떨까. SATⅠ, SAT Ⅱ처럼 쉬운 시험, 어려운 시험으로 나눠서 치르는 것은 어떨까. 교육부의 고위관료에게 “어려운 수능 시험을 왜 모두 똑같이 봐야 하지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1년에 한 번이 아닌 두세 번을 치르는 것도 고려 중이다.

교육 문제가 나오면 열이면 열, 모든 사람이 한마디씩 한다. 그래서 결론도 없고 한숨만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많이 손을 보는 것이 교육제도다. 정부가 지금하고 있는 교육개혁의 결과물은 과연 몇 년짜리일까. 공약에 얽매이고 서두르다 2년을 못 넘길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어지는 정책이라면 정권 말에 나와도 환영받고 평가받을 것이다. 사교육 업체에 EBS수능방송 반영비율을 높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인터넷 강의로 인기가 높은 M사 관계자의 반응은 “잘 될까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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