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의 중국, 떠오르는 골프 강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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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16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자리 잡은 A골프숍. 요즘 이 골프용품 가게의 가장 큰 손님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중국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캘리포니아 출장길에 미국 골프용품 업체에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04>

“요즘 로스앤젤레스의 골프용품 가게는 조금 과장을 보태면 중국 사람들 덕분에 먹고살아요. 돈 많은 중국인들은 관광을 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왔다가 내친 김에 골프클럽까지 사 간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가격을 묻지도 않는대요. 그저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골프클럽을 보여 달라’고 말한 뒤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현찰을 내고 (골프채를) 가져간다고 해요. 이러니 중국인이야말로 ‘큰손’이라고 할 만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금을 내고 골프클럽을 사 간단 말이야? 클럽 한 세트가 얼마인데?”

“중국 사람들은 한 세트에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넘는 일제 클럽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 간다니까요. 중국에도 일본, 미국 브랜드의 클럽이 널렸지만 그건 ‘짝퉁’이라며 외면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현찰을 주고서라도 미국에서 진짜 ‘메이커’ 제품을 사 간다는 거예요.”

좀 황당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드디어 골프에 눈을 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들의 골프 열풍을 보여주는 두 번째 사례. 여행업계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골프여행을 시작했다. 중국 내 골프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드디어 적잖은 중국인이 동남아로 골프투어에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1만 명이 넘는 중국인이 한꺼번에 제주도로 골프관광을 오려 했지만 방을 구하지 못해 행선지를 동남아로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스포츠로 불리는 골프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달라지는 중국의 골프 열기를 보면 중국이 골프 강국으로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골프는 중국인들의 호방한 기질과 잘 맞아떨어진다. 골프클럽을 현찰을 주고 싹쓸이했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골프의 인기도 올라가고 있다. 이런 골프 열기를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자동차·전자·IT·금융 등의 기업들이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만 대회를 주최해도 3~4년이 휙 지날 판이다. PGA투어, LPGA투어 대회가 중국에서 열리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10억 명을 헤아리는 중국인의 1%만 골프를 즐긴다 해도 골프 인구가 1000만 명이다. 그래서 공급이 넘쳐나는 제주도 골프장을 먹여 살릴 곳은 중국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렇게 중국 골프시장은 날로 커지는데 우리나라 골프 관련 산업의 토양은 척박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골프 선수들은 세계 일류인데 우리나라 골프 관련 산업은 1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골프가 부자들만의 ‘스포츠’가 아니라 굴뚝이 필요 없는 ‘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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