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당당치 못한 기여입학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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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억원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교육부는 커녕 총장실에도 보고하지 않고 자체 폐기시킨 계획인데…. "

20억원 이상 기부자의 기여입학을 추진한다는 연세대의 '기여우대 입학 계획안' 이 학생회에 의해 공개된 24일 대학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그 해명은 하루 뒤 거짓말로 드러났다. 계획안이 지난 3월 김우식(金雨植)총장에 의해 한완상(韓完相)교육부총리에게 직접 건네진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자 연세대측은 금세 말을 바꿨다.

"기여입학에 대한 여러 가지 안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교육부에 올라갔는지 확인되지 않아 생긴 착오였다. " (기획실 관계자)

그동안 끈질기게 기여입학제 추진을 고집하며 논란의 한 가운데 선 연세대다. 올초 金총장이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사학(私學)을 대표해 기필코 기여입학제를 정착시키겠다" 고 나서면서 보다 적극화 됐다.

그러나 정작 대학당국의 태도를 보면 과연 기여입학제에 대한 소신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기여입학제 임기내 추진(지난 2월 金총장)→기여입학제 불허방침 불변(교육부)→관련법 개정 요청(3월 연세대 기획실)→절대 불허(교육부) 등의 과정마다 연세대는 입장을 조금씩 바꾸었다.

겉으로는 "법 테두리 안에서 제도를 시행하겠다" 고 하면서도 뒤로는 총장이 20억원 기여입학제 추진의사를 교육부에 전달했고, 관계자들이 정치권을 돌며 의원입법을 로비했음도 드러나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성적순으로만 이뤄져온 오랜 대입 방식의 틀을 근본적으로 흔들 큰 사안이다. 때문에 충분하고 폭넓은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돈으로 학력을 산다' 는 인식 때문에 아직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제도라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입장을 바꾸는 연세대의 모습은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를 의욕만 앞세우다 오히려 망치는 것 아니냐" 는 얘기를 들을 만하다.

연세대는 좀더 차분해져야 할 것 같다. 기왕이면 보다 당당한 논리와 태도도 필요하다. "학내에서조차 이 제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없었다" 는 지적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홍주연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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