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희덕 '빗방울, 빗방울'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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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 나희덕(1966~ )의 '빗방울, 빗방울' 중

시인이란, 유리창 밖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 빗줄기에도 놀라운 의미를 부여하는 자인가 보다. 버스가 달려야 경쾌한 사선이 생긴다. 버스가 멈추면 경쾌함은 사라진다.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수직과 수평에 의해 세계가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듯이.

한 치라도 벗어나면 따돌림을 받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법과 규율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려 드는 이 세계에 대해 이 시는 어긋남의 아름다움을 나직하게 말하고자 한다. 시인의 이 버스는 우리 모두의 생을 태우고 달려야겠구나.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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