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유홍준 '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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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떡집에 가서 떡 뽑는다

떡방앗간 기계 헐떡거리며 혓바닥을 내민다

떡집 여자 가위를 들고

쉴새없이 혓바닥을 자른다

혓바닥 위에

수레바퀴 문양을 찍는다 뜨끈뜨끈한

혓바닥 담은 상자 넘겨받고 떡집 나서면

세상 모든 길이 검은 절편, 검은 혓바닥

망상 위에 기름 발라가며 떡 싣고 돌아가는 길

떡살무늬 바퀴를 끼운 자동차들 죽음을 향해 어깰 겨룬다

더러는 잘못 찍은 절편의 문양처럼

뭉개지고 찌그러지고

- 유홍준(1964~ )의 '절편'

어느 날 문득 이 낯선 시인의 시가 나한테 깊숙이 들어왔다. 상상력의 신선도가 높고, 자기 식대로 말을 굴리는 능력이 오랜 수련을 거친 듯하다. 절편이란 얼마나 케케묵은 과거의 음식인가. 그런데 이 시에 와서 절편은 혓바닥으로, 또 세상의 모든 길로 아주 유쾌하게 변주되고 있다.

절편의 떡살무늬를 현대의 자동차 바퀴 문양으로 건너 뛰어가게 만드는 솜씨도 기발하다. 하지만 겉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면서도 시인은 생의 이면에 숨어 있는 죽음을 슬쩍 꺼내 놓는다. 가히 절편(絶篇)이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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