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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명인] 배첩장 김표영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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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그의 손은 약손과 같다. 새까만 때가 덕지덕지 붙은 그림이나 수백년 세월 에 부대껴 너덜거리는 책도 말끔한 자태로 다시 태어난다. 섬세한 손길로 먼지를 털어내고 보니 그 전에는 안보였던 부처님 옷자락의 잔주름이 나타나고, 해진 책도 새로 장정을 하면 방금 찍어낸 책처럼 서향이 물씬 풍긴다.

1996년 국내 유일한 배첩장(중요 무형문화재 102호)으로 지정된 김표영(76.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씨는 오래된 서화(書畵)를 되살려내며 전통 문화재 보존에 큰 기여를 해왔다.

배첩(褙貼)은 말 그대로 서화의 뒷(背)면에 옷(衣)을 붙이는(貼) 작업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표구(表具)' 라는 말이 액자.병풍.족자 등을 제작하는 작업만을 가리키는 데 비해 배첩은 단순 표구 작업에서부터 전통 서화처리법으로 오래된 서화를 되살리고 보존하는 작업까지 통틀어 말한다.

책.글씨.그림 등 지류(紙類)는 배첩을 하지 않으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훼손되기 십상이다. 배첩장의 손길을 거쳐야만 이들 문화재가 수백년 시공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넘겨질 수 있다.

조그만 공방을 생각하고 찾아간 김씨의 '지류문화재연구소' (031-908-1769)는 의외로 90여평에 이를 정도로 넓었다. 폭만 10m에 가까운 괘불(掛佛)을 배첩해야 할 경우가 많아 김씨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더라도 큼직한 공간을 세냈다고 한다.

종이나 비단을 서화 뒤에 덧대는 작업이라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오랜 경험과 꼼꼼한 손놀림이 중요하다. 특히 높은 안목과 기술이 필요한 고서화 처리 작업에서 김씨는 전통적 배첩기술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첩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풀과 종이다. 우리나라 전통 배첩은 밀가루를 보통 1년 정도 삭혀서 만든 풀만을 사용한다. 물에 담근 밀가루가 썩을 때마다 물을 갈아주면 나중에 이물질은 모두 빠져나가고 순수한 풀만 남게된다. 밀가루 한 포대를 10년 삭히면 나중에 한 움큼만 남지만 끈기는 화학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좋은 재료에 대한 김씨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일본 교토(京都)에서 백토지(白土紙)를 비싼 돈을 주고 사왔으나 올 가을부터는 직접 만들어 사용할 예정이다.

배첩은 글씨와 그림에 따라 세부 작업과정이 다르다. 그림의 경우 우선 상태를 살펴보고 안료 기운이 다한 부분에 다시 안료를 묻히고 식빵으로 그림의 때를 말끔히 빼낸다. 그림을 엎어놓고 오래된 종이를 떼낸 후 한지를 새로 붙이고 건조판에 말린다. 그림 가장자리에 비단을 붙이고 다시 한번 한지로 덧댄다. 커다란 괘불을 배첩할 때는 6개월 이상 걸린다.

고문서나 경책의 배첩은 한장 한장 떼어내 낱장을 따뜻한 물에 빤다. 한지는 물에 빨아도 풀어지지 않아 묵은 때만 씻겨나가고 먹빛은 제 색깔을 되찾는다. 때가 빠진 종이를 건져내 말린 다음 다시 장정한다. 다섯번 꿰맨다고 해서 오침(五針)이라고도 불린다. 서책을 배첩하면 적어도 5백년은 제대로 보존된다고 한다.

그의 손을 거쳐간 국보.보물급 문화재만 해도 2백여점이 넘는다. 개인 전시장이 따로 필요없다. 전국 주요 박물관 사찰에는 빠짐없이 그의 '작품' 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배첩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39년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4세가 되던 해 '먹고 살기 위해' 청주에서 사촌 매형이 운영하는 표구사에 들어가 일을 도왔다. 칼 가는 데 2년, 풀 쑤는 데 2년, 호된 도제 생활을 겪고 나서 겨우 기본적인 배첩일을 배웠다. 이만하면 동네 표구사를 운영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김씨는 54년 당대 최고인 인사동 '박당 표구사' 김용복씨를 찾아 본격적으로 배첩일을 배웠다.

일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넉넉히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닌데 김씨는 전통문화 보존에 앞장선다는 자부심만으로 배첩일을 놓지 않고 있다.

김씨는 "물론 그림을 치거나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은 예술작업은 아니지만 배첩이 없었다면 지금 추사 김정희의 서체나 김홍도의 풍속화를 볼 수 있겠느냐" 며 긍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고서나 그림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인다고 한다.

김씨는 "이제까지 국보급 문화재를 숱하게 복원했지만 197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 보수 공사 중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 126호)을 일본인의 손에 맡겨 배첩한 것은 평생 마음에 걸린다" 며 아직도 애석해 한다.

일산=이철재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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