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 '진주만' 시사회장부터 후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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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와이키키 해변으로 상징되는 휴양섬 하와이가 역사상 가장 주목을 받은 사건은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공습이었다. 그런 아픈 기억을 간직한 하와이에서 미국 영화제작사 디즈니가 '진주만(Pearl Harbor)' 으로 할리우드의 흥행역사를 바꾸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아마겟돈' 과 '더 록' 을 만든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 감독이 1억4천5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쏟아부어 만든 '진주만' 은 지난해 4월 제작에 들어갈 때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국내에서도 서울에만 개봉관 60여곳(스크린 수 80여개)이 잡혀 있어 '친구' 의 개봉 최다 스크린 수(62개)기록이 깨질 전망이다.

25일 미국 개봉(국내는 6월 1일)을 앞두고 시사회가 열린 하와이 호놀룰루는 잠시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한 듯했다.

주요 촬영지가 된 이곳에서 이 영화가 첫선을 보이자 전세계 34개국에서 7백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하와이 현지 언론들도 연일 '진주만' 이 '타이타닉' 의 흥행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사회는 현지시간으로 21일 밤(한국시간 22일 오후)진주만에 있는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 갑판에서 열렸다. 17층 빌딩 높이의 세계 최대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석대를 도열시킨 채 열린 시사회는 전투기들의 화려한 에어쇼와 컨트리 가수 페이스 힐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마치 영화제 개막식을 떠올리게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진주만' 은 부풀려진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지만 볼거리는 꽤 갖추고 있었다.

역시 전투 액션 장면들이 가공할 만했다. 최장 1백80m에 달하는 여섯 척의 초대형 군함이 폭파되는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의 육상 전투와는 또 다른 스케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장면에만 7백개의 다이너마이트가 사용됐으며 촬영기간이 1개월이 넘을 만큼 공을 들였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가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만큼 후끈했다. 미군과 일본군이 공중전을 벌이는 장면도 뇌리에 남을 만한데 카메라를 전투기에 장착한 듯한 특수효과가 생생한 입체감을 준다.

반 시간이 넘는 전투 액션이 씨줄이라면 미 항공대 소속의 파일럿 레이프(벤 애플렉)와 그의 연인인 간호장교 에블린(케이트 베킨세일)의 사랑이 영화의 날줄이다. 이 둘 사이에 레이프의 둘도 없는 친구인 대니(조시 하트넷)가 끼어들면서 비극이 시작되는데, 전쟁의 혼란은 그들을 더욱 처참한 비극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화려한 볼거리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려면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이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해야 할 텐데 이리저리 오가는 에블린의 사랑에 공감할 이들이 적을 것 같고, 후반부로 갈수록 전쟁 이야기에 밀려 사랑은 힘을 잃고 만다. 2시간 55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은 물리적으로도 길지만 구성의 탄탄함이 떨어지는 탓에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벤 애플렉과 조시 하트넷은 전투기 조종사의 역동적인 면모와 숙명적인 사랑의 아픔을 잘 표현해냈다. 이들에 비하면 케이트 베킨세일의 연기에서는 비중에 비해 매력적인 점을 찾기 어렵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CF감독 출신이어서 그런지 볼만한 화면을 만드는 데는 일가견을 보이지만 장황한 스토리를 수습하는 데는 능숙함이 떨어진다.

호놀룰루(하와이)=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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