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뮤지컬은 성악가수들의 무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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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난주 남산의 서울예술대학에서 열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 현장. 총 1백억원을 들여 만든다는 이 작품에 나서겠다는 배우들의 자세는 진지하다 못해 긴장돼 보였다. 서류심사를 거친 오디션 응시자는 모두 2백80여명. 남경주.조승우 등 국내 뮤지컬 스타는 물론 국내 A급 오페라 가수들도 몇명 참여했다.

제작사인 '제미로' 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곡들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 위해 처음부터 성악전공자 혹은 성악발성이 가능한 배우로 제한했다. 이번 오디션 전체 응시자의 60% 이상이 성악전공자. 최근 국내 젊은 성악가들이 대거 뮤지컬 무대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음악계 본류의 반응이다. 마치 '한번 뮤지컬 무대에 서면 성악가수로서의 생명은 끝' 이라는 식이다. "누구 누구가 이번 오디션에 간다더라" 는 정보도 오가고 있단다.

이 때문에 오디션에 응시한 오페라가수의 대부분이 "오디션 참가를 끝까지 비밀로 해 달라" 고 신신당부했다는 후문. "그 중에는 제자들은 못 오게 하고 자기만 몰래 와서 오디션을 보고 간 대학교수도 있다" 고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서울대 박인수 교수가 가수 이동원씨와 가요 '향수' 를 불러 '근엄한' 클래식계의 질타를 받은 게 10년전 일이다. 하지만 그 후 음악계에 불어닥친 크로스오버의 바람은 많은 성악가들을 뮤지컬 무대로 끌어냈다.

'명성황후' 의 이태원과 김원정이 대표적인 예. 음악회에 나설 기회가 크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보수적인 클래식에만 갇히기 싫다는 세태의 반영이기도 하다.

윤호진 에이콤대표는 "뮤지컬이 오페라화하고, 반대로 오페라는 뮤지컬 같은 오락성을 가미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 영역을 의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 이라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는 본연의 자세를 잊어서는 안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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