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야당 자문기구 겁주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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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정(司正)당국이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특별감찰 활동을 벌인다면서 한나라당 국가혁신위 참여설이 나도는 교수나 학자들을 내사 중인 것으로 전해져 야당측이 정치사찰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정당국이 문제삼겠다는 대상자들은 주로 정부 연구소 연구위원과 국립대 교수들로 알려져 이들의 정당 자문활동과 함께 두뇌집단의 야당 유입을 봉쇄하려는 처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사정 당국자는 현재 총리실과 감사원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공직기강 감찰은 인사철 복지부동과 기강문란을 척결하기 위한 통상적 업무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광옥(辛光玉) 청와대 민정수석은 야당의 국가혁신위 명단과 관련, "부처별로 장관들이 당연히 알아서 조사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기관에 근무하면서 그런 소신을 갖고 있다면 그냥 둘 수 없다" 고 덧붙였다. 특별감찰이 한나라당 혁신위 참여자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강력 시사한 대목이다. 이는 결국 공직기강 확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야당을 돕거나 줄을 대려는 행동을 견제하려는 겁주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은 국가공무원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 교수들은 정당 가입 등의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당법에 규정해두고 있다. 이런 법정신에 따르면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이나 학자들도 정당 자문하는 등의 활동은 허용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당이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학자.전문가집단의 자문활동은 생산적 정책을 만들어가는 데 없어선 안될 필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이 나름대로의 싱크탱크에서 탄탄한 정책을 생산하고 그것을 토대로 정책대결을 벌여나가는 장면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선진정치의 모습이다. 정부.여당이 권력의 힘을 이용, 야당으로 향하는 인재의 행렬을 막으려 한다면 이는 정도가 아니다.

최근 위촉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50명 중에도 위원장인 한상진(韓相震)서울대 교수를 비롯, 국책연구소 연구위원과 국립대 교수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야당 시절 '아태재단' 을 만들어 각계인사에게 자문해 왔다. 이 때문에 야당에선 "교수들의 여당 자문은 괜찮고, 야당 자문은 안되느냐" 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 부처에서는 공무원들이 야당에 줄대기를 하느라 복지부동하느니, 눈치보기를 하느니 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들의 야당줄대기나 정보 유출 같은 것은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처리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법에도 허용돼 있는 교수들의 야당 참여를 막는다든가, 야당에 정책자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말로 속좁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특별감찰이 그러한 발걸음에 대한 겁주기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이라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정치도의에도 어긋나는 처사다. 정부.여당은 통상업무라고 변명만 할 게 아니라 야당 탄압의 소지는 없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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