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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미당비판에 대한 이근배씨 반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시인 고은씨가 지난해 말 타계한 미당 서정주의 시와 삶에 대해 "역사의식없이 권력에 안주했다" 며 정면으로 공박하는 평론을 내놓았다(본지 5월 17일자 17면). 고씨의 이러한 평론에 대한 반론을 시인 이근배(사진)씨가 보내와 싣는다.

시는 사랑이다. 문학은 사랑에서 일어나고 사랑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더욱 비판의 글일 때는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종아리에 때리는 회초리 같아야 한다.

아니 오히려 아들에게 회초리를 쥐여주고 대신 종아리를 걷어올리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은씨의 '미당담론' 을 읽으며 나는 참담한 회의를 느껴야 했다.

첫째로 고은씨가 미당 타계 후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를 찾기 어려웠고, 둘째로 문학과 삶에 대한 '담론' 을 쓰는 것이라면 먼저 우리 시대의 가장 눈부신 모국어의 빛살로 시의 산맥을 이룬 미당의 시 세계에 깊이 천착했어야 하며, 셋째로 이미 무수히 밝혀져 왔고 미당으로서도 충분히 값을 치른 일제와 1980년대의 일에 대한 포폄(褒貶)에 앞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위의 세가지가 빠진 글이라면 '담론' 이 못되는 도청도설(塗聽塗說)이기 때문이다.

고씨는 서두에 "미당은 나의 추억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단절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 그 글을 쓰는 까닭을 밝히고 있다.

'추억의 대상' 으로는 '현대문학' 지에 추천해준 인연의 몇 줄 뿐이고, '단절의 대상' 으로만 전편을 실어 벼랑으로 떠밀고 있다. 당시 '현대문학' 은 문학 지망생의 가장 높은 등용문이었고 시는 3회 추천을 받아야 비로소 등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짧아도 2, 3년 걸리는 것을 미당은 오직 한 사람 고씨만을 한꺼번에 3편을 실어 추천완료를 시키는 파격적인 편애를 주었다.

고씨의 오늘이 있기까지 미당의 꼬리표가 큰몫을 했었던 것이고, 그로부터 반세기 가깝게 지나와서 스승의 산소에 바치는 헌사가 칼을 꽂는 일이라니 고씨와 젊은날의 추억이 있는 나로서는 어찌 슬프고 두렵지 않겠는가.

이른바 대동아전쟁 말기에 일제의 위압에 짓눌려 쓴 미당의 친일시를 두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고씨가 그 점을 다시 들먹이며 단절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면 미당의 추천을 거부했어야 옳았고, 당시에는 몰랐었다면 알게 된 시점에서 추천을 반납하고 다른 길을 걸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뒤늦게 시류에 편승하는 돌팔매질에 끼어들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돌을 던지라' 고 나서는 용기는 없었던 것일까. 그랬더라면 우리 모두 고씨에게 박수를 보냈을 터이고, 질마재에 누워 있는 미당도 아파했을 것을.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시재(詩才)라면 둘째가기를 마다하는 고씨의 시 읽기의 오류다. '자화상' 은 이 나라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시다. "애비는 종이었다" 를 놓고 미당 부친이 마름이었다는 얘기가 왜 나오는가. 일제하에서 우리 백성들이 종살이를 한 것은 밭을 가는 농부도 하는 말이다.

"스물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은 스물세살 미당의 감성이 뽑아든 태풍이었고 번개였다. 거기 눈 멀었음인가, 이를 두고 "50세 내지 60세쯤 살고 뱉어내는 탄식" 이어야 한다면 고씨의 20, 30대 시는 어디로 보내져야 하는가.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와 맞물리는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를 고씨는 회개의 아픔이 없는 자기합리화로 읽고 있다. '뉘우치진 않을란다' 가 시의 첫걸음에 나오는 패러독스 또는 아이러니 기법인 것을 모르고 있음인지. 더욱이 고씨의 말대로라고 해도 시단에 갓 나온 미당이 친일시를 썼던 때도 아니고 신군부와 만났을 때도 아니다.

왜 "명작은 많고 졸작은 많지 않다" 고 하면서도 명작에 대한 찬사는 한 줄도 안보이고 명작을 훼손하는데 지면을 소모했어야 하는지□ 들어야 할 붓과 꺾어야 할 붓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끝으로 카뮈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했다는 말, "나는 정의를 사랑한다. 그러나 정의가 내 어머니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다면 나는 어머니의 편에 설 것이다" 를 고씨에게 돌려주고 싶다.

<시인.재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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