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영화 ]EBS '남 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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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남 쪽 (EBS 밤 10시)〓지난해 개봉한 '박하사탕' 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한 사병의 비극적 인생 20여년을 플래시백(회상)기법으로 능숙하게 처리했다. 아르헨티나의 사회파 감독으로 꼽히는 페르난도 솔라나스가 1987년에 만든 '남쪽' 의 소재와 주제도 '박하사탕' 과 엇비슷하다. 독재정권의 상흔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형식은 매우 다르다. '박하사탕' 이 계속 과거를 파고들며 고통스런 현재의 뿌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남쪽' 은 주인공이 과거에 만났던 인물들을 현재 앞에 상상으로 불러낸다.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남미 특유의 문학적 전통을 영화에 접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군사독재 정권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바뀐 1983년이 시대적 배경이다. 주인공 플로리알은 정치범으로 5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던 인물. 달라진 정치상황 덕분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자유를 되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그에게 어색하고 꿈만 같다. 그는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리를 방황하며 이미 사망한 동료들의 혼령을 만나게 되는데….

감독은 이같은 환상적 장치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억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수려한 화면 속에 정치라는 묵중한 주제를 시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강렬한 탱고 선율도 매혹적이다. 원제 Sur(The South).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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