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감각의 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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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감각의 제국' 은 일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76년작 영화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적으로 이 영화와 관련된 얘기인가. 그건 아니다.

'라캉으로 영화 읽기' 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을 비롯한 12편의 영화를 라캉의 이론을 적용해 분석한 고난도의 영화 비평서다.

올해로 탄생 1백년이 된 자크 자캉(1901~81)은 이론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정신분석 학자이며 철학자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이론을 되살리고 재해석하며 '제2의 정신분석 혁명' 을 역설한 인물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단순한 현실 적응기술, 즉 치료심리학으로 변질시키려는 무리들에게 반기를 들고 이를 철학.문화예술이론.여성이론 등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저자는 주로 '주이상스(jouissance)' 의 개념을 끌어들여 영화를 분석한다. 이는 몸이 느끼는 신비한 희열과 오르가즘의 의미로 프랑스의 지성 조르주 바타유는 이를 '아주 짧은 죽음' 으로 보았으며, 라캉은 '죽음 충동' 이란 말로 바꾸었다.

저자는 '글래디에이터' 를 이 주이상스가 잘 구현된 영화로 꼽았다. 두 주인공 중 막시무스는 그것이 욕망을 낳는 승화의 과정을 실천한 인물로, 코모두스는 그것으로 하강하여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을 대표하는 인물로 규정했다.

이런 식의 비평 대상이 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아메리칸 뷰티' '잉글리시 페이션트' 등이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1백쪽 정도를 정신분석학의 개념설명에 할애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다는 점에서 숙성된 라캉연구서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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