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기 책동네]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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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예나 지금이나 어린 시절이란 부모들이 내세우는 '안된다' 라는, 반대와 거절로 가득찬 우울한 세계다. 아이들이 보기엔 대체 왜 그렇게 안되는 게 많은지, 정말 안돼서 안되는 건지 의아할 때도 많다.

나이가 차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부모와 자식이란 정녕 '쌍방향' 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명하달' 의 관계일까.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부모와 자식 간에 신뢰와 이해가 없으면 얼마나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풍부한 상상과 은유로 보여주는 동화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모모』의 작가가 쓴 작품답게 기승전결이 잘 짜여 있어 서로 오해했다가 진심을 헤아린 끝에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다독이는 화해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그림도 다소 음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작품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소녀 렝켄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면 "배탈 날까봐 안된다" 고 하고, 신발을 빨아달라고 하면 "다 컸으니 네가 알아서 빨아 신어라" 고 하는 부모에게 짜증이 나 빗물 거리에 사는 요정을 찾아간다.

요정이 제시한 비법은 바로 마법의 각설탕 두 쪽. 부모에게 몰래 먹이면 렝켄의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그들의 키가 절반씩 줄어들게 된다.

요정은 각설탕을 무료로 건네주며 "단 다시 한번 이 설탕을 필요로 하게 될 때는 값을 비싸게 치러야 한다" 고 경고한다. 부모들의 키가 쭉쭉 줄어드는 것을 보고 즐거움에 들떠 하던 렝켄은 오래지 않아 자신이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바람막이' 가 돼주던 부모의 존재를 절실히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요정을 다시 찾아간 렝켄은 딜레마에 빠진다. 각설탕을 다시 받아 먹으면 부모에게 걸린 마법은 풀리지만, 대신 그들의 말을 거역하면 이번에는 렝켄의 키가 절반씩 줄어들기 때문. 부모를 다시 찾고 싶은 어린 마음과 자신이 난쟁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의 긴장감은 읽는 아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하다.

엄마와 아빠가 점점 작아져 휴지로 옷을 해 입고 성냥갑 속에 들어가 잔다는 설정이 재미나다.

가령 "계속 절반으로 줄어든다 해도 티끌처럼 작아질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는 아빠의 '과학적' 인 주장은 독자의 머릿속에 무한대로 줄어들기를 거듭하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각설탕 한 개로 하루 아침에 뒤바뀌는 부모와 자식의 입장은 가히 '역할극' 의 체험에 견줄 만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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