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PI의 우려' 와 정부의 감정적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제언론인협회(IPI)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비판언론 재갈물리기(muzzle)' 라는 우려를 표시한 데 대해 정부는 내정간섭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요한 프리츠 IPI 사무총장 앞으로 항의성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6개항의 질의서는, IPI 서신을 "한국민의 자존심을 도외시한 무례한 내정간섭 행위" 로 보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청했다. 국가기관의 공식문서치곤 다분히 감정적으로 비치는 과잉반응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IPI는 세계신문협회(WAN)와 함께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단체로 한국에서 진행 중인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다. IPI는 서한에서 "과거 몇개월 동안 독립언론에 대한 정부와 친정부매체.자칭 언론개혁론자들의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고 지적하고 "민주주의 국가에 적합한 방식" 의 해결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빅3' 신문 등 관련 언론사 대표간 원탁회의를 제안했고 민주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차기 이사회에서 한국을 IPI 관찰리스트(watch list)에 올릴 것을 제안할 수밖에 없다" 고 경고했다.

관찰리스트란 정부의 언론통제가 심한 나라를 계속 주시하겠다는 경고이자 언론 부자유의 징표다. 현재 관찰리스트에는 러시아와 페루.스리랑카.베네수엘라 등이 올라 있다. IPI가 국제적 수치의 대상인 관찰리스트에 우리를 들먹인 자체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리스트를 적용하겠다는 게 아니라 '민주적 해결' 이란 중재안을 제시한 비교적 온건한 방안으로 보인다. 정부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왜 IPI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지, 그들의 제안이 실효성 있는 방안인지 신중히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 질의서는 '언론자유가 만개한' 현 정부에 대해 왜 IPI가 언론상황을 폄하.왜곡하느냐고 따졌는데 과연 우리 현실이 그러한가. IPI가 제기한 우려는 국내 언론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 언론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진행 중인 세무조사가 진정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길 바란다. 그때까지 국내외 언론은 정부를 '관찰대상' 으로 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