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영어유학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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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에 사는 주부 정모(43)씨는 지난 7월 둘째 아들 김모(15)군을 인도로 유학보냈다. 비용이 미국.캐나다의 3분의1밖에 들지 않는 데다 영어가 공용어여서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정씨는 "인도에서는 마약이나 술.담배를 접하기 어려워 탈선할 가능성이 작다"며 "정보통신(IT)산업이 발전해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들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그동안 유학지로 선호되던 국가들 대신'제3의 영어권'이 새로운 유학지로 떠오르고 있다. 적은 돈으로 영어와 외국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말레이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조기 유학 및 어학 연수지로 각광받고 있다.

?부상하는 제3의 영어권=교육부에 따르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남아공.말레이시아.인도.피지.필리핀 등 5개 국가로 유학을 떠난 사람은 지난해 1만283명. 1999년(1582명)보다 6배 가까이 늘어났다. 관광비자로 어학연수 등 단기유학생을 감안하면 연간 2만명 이상이 이들 국가로 떠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e아시아 유학원 박인호 원장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1년에 1100만원 정도 투자하면 1대1 강의로 영어를 배운다"며 "이들 나라에서 영어를 배운 뒤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에 진학하는'징검다리'유학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을 겪지 않고 당당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이들 국가에 유학생이 몰리는 요인이다. 특히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은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인 유학생들의 인기가 높다. 미국.유럽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배우며 여유롭게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주부 이모(42)씨는 지난해 두 딸과 함께 피지로'엄마 유학'을 떠났다. 정씨는 두 딸을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자신은 대학에서 영어연수 코스를 밟고 있다. 정씨는 "순수 교육비가 6개월에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골프.승마 등 고급 스포츠를 싼값에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백인 거주지역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유학업체들은 선전하고 있다. 피지나 몰타는 레저를 즐기며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인도는 IT.요가 등 분야별 연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유학원 측의 주장이다.

?정통영어 배우기 어려워=이들 국가로 유학 가는 것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미국.유럽에 비해 치안이 불안하고 유학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가 영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발음이나 표현이 정통 영어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 등에 비해 한국 사람이 적어 외롭다는 점도 유학생들이 견뎌야 할 숙제다.

서울대 영문학과 박용예 교수는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 초급자들이 회화 능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원어민 수가 적고 정교한 학습프로그램이 덜 갖춰진 점을 감안하면 고급 의사소통이 가능한 실력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 영사과 박시정 서기관은 "물가가 싸다는 이유로 제3의 영어권에 대한 현지 실정을 모른 채 유학을 갔다가 뒤늦게 부실교육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용.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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