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자교육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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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문학자도 아니고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처지도 아니지만 필자는 한자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

지난 5월 2일 중앙일보에 실린 한자에 관한 보도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서울대 신입생 중에 한자 문맹(文盲)이 많고, 상당수가 중학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이 어찌된 일인가.

*** 대학생 한자문맹 수두룩

대학국어 수강생 2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자 독해력 시험 결과 상상할 수 없는 뜻밖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기초한자 지식이 낮다고는 하지만 '목표(目標)' 를 '자표' 로, '독자(讀者)' 를 '필자' 로 읽을 수가 있겠는가.

교과서를 못읽어 수업이 안된다는 교수들의 말을 들으니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 어찌 서울대만의 문제겠는가.

필자의 한문실력도 별것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나마도 어렸을 때 배운 지식이다.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시절에는 습자(習字)시간이 있어서 누구나 붓으로 한자를 쓰는 연습을 했다.

필자의 경우에는 유달리 어려움이 많았다. 필자의 이름 가운데자인 '이(彛)' 자 때문이다. 붓으로 쓰니 다른 자와 균형이 맞지 않아서 애먹었던 생각이 난다.

보통학교 2학년 때 선친에게 '彛' 자를 쉬운 자로 바꾸든지 없애든지 해달라고 용기를 내어 건의했다. 당시는 자식된 자가 부친에게 건의와 같은 것은 올리기 힘들었다.

그랬더니 부친은 "집안에 상놈이 생겼다" 고 대로했는데 그때의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彛' 자는 우리 집안의 항렬자의 하나다. 그러니 부친의 입장에서는 괘씸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친의 함자는 너 이(餌)자 구슬 옥(玉)자다. 한글로 쓰면 권이옥이니 필자와 부자지간이 아니라 형제지간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굳이 이(餌)자를 쓴 이유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필자의 선대항렬자는 '옥(玉)' 자이니 말이다.

이러한 사정에서 성명은 한자로 써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분간하기 힘든 동명이인이 많이 생길 뿐더러 혼돈스러운 일도 다발하게 된다. 지난해 4월에 주민등록증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한때는 성명을 한글로만 표기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과제를 다루는 실무진이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한자 표기를 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섬뜩한 느낌까지도 들었다. 다행히도 당시의 김종필(金鍾泌)총리와 김용채(金鎔采)비서실장의 노력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게 되었다고 듣고 있다.

올해는 '한국방문의 해' 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기를 기대한다. 외국인 중에는 한자권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나라에서도 한자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

모처럼 한국을 방문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불평이 쉴새없이 들려온다. 사실 거리에 나가도 한자 간판이나 도로표지판은 거의 없다. 그러니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필자는 88년 올림픽을 앞둔 어느 각의(閣議)에서 한자 간판이나 도로 표지판을 군데군데 세울 것을 건의한 일이 있다. 컴퓨터 관계로 한자사용이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고 필자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우리말 70%가 한자 연유

그러나 요사이는 컴퓨터 문제도 해결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년 남짓 후면 월드컵이 개최된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를 바라며 이들을 위한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한번 방문한 사람이 두번, 세번 찾아오고 싶도록 좋은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사족을 붙일 나위가 없다.

'한국 방문의 해' 와 '월드컵' 을 계기로 한자교육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간 한자교육추진운동(漢字敎育推進運動)에 동참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어릴 때부터 한자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한자도 국자(國字)인 것이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에 연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표음(表音)문자의 극치인 한글과 표의(表意)문자의 극치인 한자가 조화를 이룰 때에 우리말은 더욱 명확하고 아름답게 빛난다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가 없다. 항상 되풀이하는 주장이지만 다시한번 되풀이한다.

권이혁 성균관대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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