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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섈 위 댄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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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 붐을 타고 꽤 많은 일본 영화가 우리에게 선보였다. '섈 위 댄스?' 도 그 중 하나다. 어렵사리 과장으로 승진하고 아담한 주택까지 마련해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중년 샐러리맨이 단조로운 생활에서 뭔가 갈증을 느낀다. 전철 정거장에서 올려다보이는 볼룸댄스장에 눈이 끌리면서 그는 한발씩 춤바람에 빠져든다.

*** 일본이 처한 상황과 흡사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의심을 품은 아내가 흥신소까지 찾아가는 위기상황도 있지만 아내는 인내심 있게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린다.

흔한 통속영화라면 춤바람-가정불화-패가망신으로 이어질 텐데 이 영화는 볼룸댄스 자체를 예(藝)와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그의 춤바람이 샐러리맨의 생활을 더욱 윤택케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미모의 댄스 교사와 중년 사내의 불륜관계로 가는 듯하다가 그런 통속적 기대를 저버리면서 춤 자체를 신성시하는 예술 명분론으로 반전시키는 데서 이 영화는 차별화를 노렸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파동을 보면서 왜 '섈 위 댄스?' 를 떠올리는가. 우선 일본이 처한 상황이 한 샐러리맨의 갈증을 대변하는 그 이상의 답답함과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심각한 중년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세계 2, 3위의 막강한 군사기술과 부를 장악하면서도 우리의 생활은 왜 이리 풀리지 않는가. 10년에 가까운 경기침체와 한심한 정치판에 기대를 걸 데가 없다.

그렇다면 2세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 것인가. 버릇없고 국가관마저 없는 젊은이들에게 전후 우리가 일궈낸 영광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이 잘못됐다. 교육을 망친 게 누군가. 일본 국기를 교정에 걸지 못하게 하고 국가 부르는 것마저 범죄시한 일본 교원노조 산하의 교사들이 일본 교육의 장래를 망치고 있지 않는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역사를 새로 쓰자. 일본의 이런 좌절과 위기의식의 탈출구가 일본 역사교과서를 새롭게 쓰자는 극우파 집단의 결속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섈 위 댄스?' 와 일본의 역사 왜곡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년 사내의 춤바람을 볼룸댄스의 예술론으로 미화하듯 그들의 위기상황을 역사 미화를 통해 위로받으려는 과정도 유사성이 있다.

현실의 불만과 위기상황을 내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외부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때 춤바람이 일어나고 외국을 침략하는 극단적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섈 위 댄스?' 의 주인공이 그렇고 임진왜란의 풍신수길이 그러했다.

그 춤바람과 침략의 역사를 아무리 미화해봤자 '침략' 이 '진출' 이 되지 못하고 춤바람 난 중년 사내가 예술가로 둔갑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불만을 과거 회귀적 향수에 젖어 자신들의 역사를 미화해 2세 교육에 반영했다고 하자. 그 역사가 아들 딸에게 진정한 교육이 될 것이고, 국가의 영광을 드높일 기개를 그 교육을 통해 배울 것인가.

이미 임나일본부설은 천관우(千寬宇)선생의 연구를 시작으로 그 허구성이 드러난 지 오래다. 그 허구를 역사적 현실로 미화해 일본의 자존심이 되살아날 것인가.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임진왜란의 침략사례를 대륙진출로 자구수정을 한다고 해 현실의 불만이 사라지는가.

일본 정부 스스로 속죄의 대상으로 공식발표했고 유엔 인권위원회까지 보상 책임을 명백히 했던 종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수만명의 여성들을 전장의 노리개로 삼았던 그 만행의 과거가 없던 일로 사라질 것인가. 잘못된 지난날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미화하고 위장된 과거를 자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죄악 아닌가.

*** 皇居가 만들어 낸 역사관

공중촬영한 거대 도시 도쿄(東京)를 보면 중앙이 뻥 뚫려 있다. 일본천황이 기거하는 황거(皇居)지역의 넓은 숲지대가 사진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일본의 한 문명비평가가 이를 원형(圓形)의 감옥에 비유한 적이 있다.

원형의 감옥이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지적한 19세기의 초기 감옥 형태인 파놉티콘을 뜻한다. 원형의 감옥엔 중앙이 뻥 뚫려 있다. 오직 한 사람의 감시자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죄수편에선 위에서 누군가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형의 감옥이라 할 황거가 만들어내는 역사관이 황국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숨기고 미화하려는 죄수의 본능이 원형의 감옥에 갇혀 있는 일본인들의 의식이 아닐까. 이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한 일본인들은 잘못된 과거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권영빈 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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