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IMF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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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아시아 나라들끼리 서로 도와 역내 파급을 막기 위한 국제협력 시스템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 체제가 24일 공식 출범한다. 여기엔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 회원국 전체에 홍콩까지 참여한다. 참여국가들은 총 1200억 달러의 ‘비상금’을 준비해 뒀다. 한국은 192억 달러를 내고, 필요할 때 그만큼 뽑아쓸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처럼 외환위기가 일어난 국가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아시아판 IMF’나 ‘아시아통화기금(AMF)’이란 별명도 달았다. 올해 공동 의장국은 중국과 베트남이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아세안+3’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가 마련하고 지난해 12월 24일 서명절차를 끝낸 CMI 다자화 계약이 24일 발효된다. 각국 대표가 서명한 지 90일 뒤에 발효한다는 다자화 계약서에 따른 것이다.

회원국 간에 비상금을 돌려쓸 수 있도록 한 ‘스와프’ 규모는 당초 780억 달러에서 1200억 달러로 커졌다. 자금 지원은 회원국이 요청한 뒤 1주일 내에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회원국에 대해 신속하고 체계적인 자금지원을 해주면서 역내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자는 게 CMI 다자화의 기본 목적이다.

CMI 다자화는 한·중·일과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 등 아세안 5개국 사이의 개별적 양자 스와프 계약이던 기존 CMI와는 다르다. 한·중·일과 아세안 10개 회원국 전체에 홍콩까지 단일계약으로 참여한 다자간 스와프 체제다. 아세안 10개국에는 기존 5개국 외에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미얀마 등 5개국이 들어간다.

CMI 다자화 기금은 한국이 16%를, 중국(홍콩 포함)과 일본은 각각 32%(384억 달러)씩 부담한다. 나머지 20%(240억 달러)는 아세안 국가들이 나눠 낸다. 다만 1200억 달러 중 IMF의 승인 없이도 쓸 수 있는 자금은 240억 달러 수준이다.

지원 자금의 만기는 90일이지만, 7회까지 연장할 수 있어 최장 2년(720일)까지 쓸 수 있다. 이자는 리보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분담금은 발효와 동시에 내는 게 아니라 자금 요청이 있을 때 비율에 따라 납부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당장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CMI 다자화가 만들어지기까지=CMI 다자화는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지난해 5월에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졌고, 지난해 말 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CMI 다자화에서 가장 큰 쟁점은 분담금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막후 대결이 치열했다. 경쟁적으로 발언권을 확대하겠다는 의도였다. 회원국은 분담금을 많이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면 구제금융을 제공할 때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그만큼 커진다. 하지만 외환보유액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 입장에서 분담금을 더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별 분담금 비율은 그 같은 격렬한 물밑 씨름 끝에 정해졌다.

투표권의 경우 분담금 비율과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 대한 배려 등이 고려됐다. 한국이 14.8%, 중국·일본·아세안(10개국)이 각각 28.4%만큼 보유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외교적 승리’라고 주장했다. 거부권과 제안권 행사에서 한국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는 이유에서다. CMI 체계에서 회원국의 추가 가입과 같은 의제는 모든 회원국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구제금융 지원이나 연장과 같은 의제들은 전체 투표권 중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어느 누구도 지배적인 발언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한국이 가진 16%의 분담금이나 14.8%의 투표권은 균형을 깨는 무게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공동의장국은 한·중·일이 3년에 한 번씩, 아세안 국가가 돌아가면서 한 번씩 1년간 맡는다. 중국이나 일본에 불리할 게 없는 방식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기엔 제격인 ‘황금분할’ 구조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아세안+3’ 회원국은 앞으로 역내 경제감시기구와 신용보증투자기구(CGIF) 설립 등 역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논의를 계속할 예정이다. 또 CMI 다자화 체제의 발효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논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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